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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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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강 청결은 중요하다. 치아는 한 번 상하면 절대 재생되지 않고, 충치는 초기에 감지하는 것이 어려워 잇몸염까지 유발하기 쉽다. 심지어 심한 충치는 소화불량도 유발할 수 있다. 이와 잇몸이 아파 음식물을 제대로 씹지 않은 채로 삼키면 위에 부담이 가 소화불량, 혹은 위염을 앓을 수도 있는 것이다. 쇼는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쇼는 충치가 주로 입 안에 사는 혐기성 세균에 의해 생긴다는 것도, 이 세균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타인과 키스를 하거나 같은 칫솔로 입을 쑤셔대지 않아도, 단지 칫솔모끼리 맞닿게 두는 것만으로도 타인과 구강 세균을 공유하게 되며, 이것이 구강 청결에 엄청나게 해가 되는 일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구강 청결은 중요하며 타인과 칫솔을 공유하는 것은 아주아주아주 극악무도하고 더러운 행동이라는 소리다.

 

 

 “알아듣겠냐, 루트?”
 “물론이지 자기. 그렇게 열심히 설명 안 해도 그 정도는 나도 알아.”
 “그런데 왜 자꾸 내 칫솔을 쓰는 거냐고?!”

 

 

 쇼는 이를 뿌득뿌득 갈며 루트 눈앞에 칫솔을 흔들었다. 칫솔모에서 투둑투둑 물방울이 떨어져 이리저리 튀었다. 루트는 눈두덩이에 튄 물을 손으로 훔쳐냈다.

 

 

 “나 방금 굉장히 끔찍한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사민.”
 “당연히 끔찍하지! 너랑 이딴 더러운 방식으로 간접키스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너 때문에 내가 이번 주에만 벌써 칫솔을 두 개나, 아니 이제 세 개째 새로 뜯게 생겼다고!”
 “우선, 그건 나 때문이 아니야, 쇼. 왜냐면 이건 내 칫솔이거든.”
 “뭐? 이게 왜 니 칫솔이야? 그제도 칫솔모가 젖어있어서 내가 버리고 새로....”
 “잠깐, 그제부터? 그럼 방금도...?”
 “.....!!!”

 

 

 루트와 쇼는 거의 동시에 화장실로 달려가 찬장에서 새 칫솔을 꺼내 맹렬하게 이를 닦았다. 여행 중이 아니면 잘 쓰지 않는 가글액까지 꺼내서 다섯 번씩 가글을 하고나서도 쇼는 루트를 눈빛만으로 불태워버릴 것처럼 노려봤다.

 

 

 “잘 봐 루트, 파란색이 내 거야!”
 “파란색이 내 거니까 알아둬, 쇼.”

 

 

 동시에 똑같은 소리를 내뱉고 나서 그녀들은 상대가 들고 있는 칫솔이 자기가 들고 있는 칫솔과 똑같은 모양에 똑같은 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문제는 이거였다. 집 근처 생활용품점에서 떨이로 묶음 판매하던 파란 칫솔 세트를 루트도 사고, 쇼도 샀다는 것.

 

 

 “하!”
 “오, 이런..”

 

 

 쇼가 기막혀하며 이를 한 번 더 구석구석 닦는 사이 낮게 탄식한 루트는 방에 가서 절연 테이프로 칫솔 손잡이를 둘둘 말아 왔다.

 

 

 “이러면 되겠지. 테이핑 된 게 내 거. 아닌 건 쇼, 네 거.”
 “됐다고? 일주일이나 내 구강의 순결을 잃었는데?”
 “칫솔이 똑같이 생겼으니까 너도 나도 어쩔 수 없었잖아. 이정도 가지고 순결을 잃었다고 표현하다니. 사민 은근히 귀엽다니까.”

 

 

 루트는 칫솔을 칫솔걸이에 걸고, 세면대 앞에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서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쇼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쇼가 기분 나쁘다는 표시로 루트의 손을 탁 쳐냈다.

 

 

 “우리 사민이 왜 심통이 난 걸까?”
 “소름끼치니까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마.”

 

 

 진심으로 진저리치는 쇼를 보며 루트가 입꼬리만 당겨 웃었다.

 

 

 “그렇게 웃지도 마. 기분 나빠.”
 “자기 혹시...”
 “거기까지. 한 마디만 더 하면 주먹 날아갈 줄 알아.”
 “내가 무슨 얘기를 할 줄 알고?”
 “무슨 말을 할 건지는 몰라도 니가 ‘자기’라고 운을 떼는 말 중에 제대로 된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건 알지.”

 

 

 쇼의 심퉁맞은 표정을 보고 루트가 경쾌하게 웃었다. 진심으로 즐거워 보이는 루트 때문에 쇼의 미간 주름이 깊어졌다.

 

 

 “난 우선 사과를 받고 싶어. 그리고,”
 “무슨 사과.”

 

 

 쇼가 루트의 말꼬리를 잘랐다. 쇼의 구겨진 미간에 ‘이건 또 무슨 수작이지?’라고 쓰여 있는 걸 보고 루트가 입을 삐죽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나한테 그딴 더러운 방식으로 간접키스나 하는 변태 스토커라고 했잖아.”
 “아냐, 변태 스토커라고는 안 했어.”
 “어쨌거나 날 그렇게 생각했다는 거잖아.”
 “아니면 됐지.”

 

 

 세면대 앞에 선 쇼를 향해 루트가 한 발짝 다가섰다. 쇼는 팔짱을 풀지 않은 채 고개만 들어 일자로 굳어있는 루트의 입술께와 속눈썹 그늘이 진 눈동자를 노려봤다.

 

 

 “쇼.”
 “뭐.”
 “사실 간접키스인 게 기분 나빴던 거지?”
 “뭐?”

 

 

 쇼가 세면대 앞에서 빠져나오는 것보다 루트가 쇼에게 키스하는 게 더 빨랐다. 아주 가볍게 입술만 스쳤을 뿐인데도 쇼는 길길이 날뛰었다. 루트는 그런 쇼를 피해 재빠르게 방으로 도망쳤으나, 바로 쫓아온 쇼에게 멱살이 잡혔다.

 

 

 “하하, 장난이었어, 사민.”
 “알아.”

 

 

 쇼는 으르렁대며 루트의 멱살을 잡아 자기 눈높이에 맞게 끌어내렸다. 그리고 루트에게 깊게 키스했다. 루트는 쇼가 키스하며 밀어붙이는 대로 뒤로 밀리다가 침대 위에 다리가 걸려 넘어졌다. 쇼가 루트를 양 팔에 가두고 위에서 내려 봤다. 루트가 가슴을 들썩이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자기 입술의 순결을 잃었겠는걸.”
 “이럴 땐 좀 닥쳐, 루트.”

 

 

 쇼가 다시 루트의 입술을 덮었다.

 

 

 

 

 

 

 

 

 

 


+ 일주일 전.

 

 “헤이, 잘생긴 파트너, 밀린 서류는 여기 있어.”
 “쇼랑 루트 이사 나 혼자 도와주는 대신 내 서류 나눠하기로 한 걸로 기억하는데.”
 “이게 이미 반 가져 간 거야.”
 “....”
 “그래, 그 아가씨들이 드디어 같이 살기로 했다고? 부부 싸움이라도 하면 건물이 날아갈지도 모르겠네.”
 “나도 동의는 하지만, 부부라는 말 쇼 앞에서 하면 당신 턱이 날아갈지도 몰라. 그나저나 퍼스코, 당신 넥타이가 낮에 카레를 먹었나봐. 양치질 좀 시켜.”

 

 


 

Posted by 얼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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