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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2.08 [창작] 발자국의 그림자
  2. 2015.03.20 창작백합

 공통주제 스터디 '발자국의 그림자'로 참여한 글입니다. 스터디 링크 -> http://get-out-of-duruurung.tistory.com/

 

 

 

 

 

 

(욕과 trigger가 될 수 있는 소재가 나옵니다. 거부감 있으신 분들은 조금..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읽어주세요...)

 

 

 

 

 

 비가 오는 날이었다. 나는 혼자 우산을 쓰고 가정법원에 다녀왔다. 각종 증명서와 등본과 무슨무슨 확인서와 몇 푼 되지 않는 내 친엄마의 재산 목록과 함께. 수 년 전, 우리 제발 연 끊고 살자고 죽일 듯이 노려봤던 사람 하나가 죽었다. 그에겐 빚은 많았고 모아둔 재산은 없었다.

 


 다른 건 서류상으로 처리하고, 그가 살던 방에는 그냥 청소 도우미 몇을 불러 버릴 수 있는 물건은 전부 버려 달라고 했다. 그냥 버릴 수 없는 대형 폐기물 처분한 값까지 거의 내 일주일 치 알바비가 들었지만, 겨우 도망쳐 나온 인간의 삶을, 어떤 형태로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빚쟁이들이 찾아와 집을 뒤집고 간 날이면, 혹은 일터에서 술에 절어 귀가한 밤이면, 그는 나 때문에 본인 인생이 고꾸라졌다며 악다구니를 썼다. 나더러 니 애비의 뺀질거리는 면상을 닮았다며 너는 애비한테서도 버림받은 년이라고 욕을 퍼부었다. 내 친아빠는 처음엔 엄마와 결혼할 것처럼 굴다가 결국 도망쳤다. 엄마는 그래서 나를 낳았다고 했다. 그 시팔놈이 착한 척 안 하고 처음부터 개새끼처럼 굴었으면 나를 낳을 필요도 없었을 거라고 했다. 그에게 나는 죽이지 못한 살덩이였다. 본인에게 매달린 혹이었다. 어느날인가 나는 그에게 버림받은 건 내가 아니라 너라고, 니 인생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시궁창이었다고 소리 질렀다가 호되게 맞았다. 따귀를 맞고 배를 걷어차이고 뺨과 등과 어깨에는 붉게 부푼 손톱자국이 생겼다. 나는 방으로 도망쳐 문을 잠갔다. 문 너머에서 계속 분풀이하는 소리를 안 들으려 베개로 귀를 막았다. 나는 끊임없이 그 여자를 죽이거나 내가 죽는 상상을 했다. 억울했다. 나는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태어나게 해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그 지긋지긋한 밤들이 겨우 머나먼 과거로 느껴지던 차였는데, 어렵게 외면한 과거는 너무나 쉽게 되살아났다. 이제 좀 안정이 된 것 같다고 안도할 때 인생은 항상 니 생각대로 흘러가게 둘 줄 알았냐고 조롱하듯이 나를 휘저었다. 얼마 되지 않는 내 평생 계속 저주해온 사람이었다. 죽었다는 소식에 당연히 후련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도 이름표를 붙이지 못할 감정들에 시달렸다.

 


 괴로운 기억밖에는 남기지 않은 사람이 죽었다. 같은 지붕 아래에서는 도망쳤지만 항상 내 발뒤꿈치를 물 수 있는 곳에 도사린 것 같았던 사람이, 영원히 사라졌다. 법원에 한정승인인지 상속한정인지 하는 서류도 냈으니, 빚쟁이들이 내게 찾아와도 나는 아무것도 줄 필요가 없다, 라고, 내가 비싼 돈 주고 자문을 구한 변호사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제게 잘 찾아오신 겁니다! 이제 더 이상 과거의 그림자에 시달리실 필요 없습니다.”

 


 변호사가 시키는 대로 서류를 작성하고, 증빙 서류 몇 개를 떼고, 그 와중에 간단하게 장례식을 치루고, 분도 당도 없이 흔적도 없이 내 인생의 가장 큰 그늘을 벗어버렸다. 하지만 내 기분은 전혀 홀가분하지 않았다. 울고 싶지도 슬프지도 않았지만 기분이 좋지도 않았다. 그렇게 증오하던 사람이 존재하지 않게 됐는데도 나는 여전히 화가 났다.

 


 나는 갈 곳 잃은 분노를 안고 지하철을 탔다. 머리가 아팠다. 멀미를 하는 것처럼 속이 뒤집어졌다. 엄마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부터 계속 이랬다.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속이 거북해서 일부러 버스 대신 지하철을 탄 거였는데, 사람이 많은 2호선으로 갈아타자 울렁거림은 더 심해졌다. 내릴 때까지 어금니를 꾹 물고 침을 삼키며 토기를 겨우 참았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골목으로 들어가 담배를 피웠다. 그러고 나니 좀 진정됐지만 버스는 도저히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집까지는 오르막길을 20분이나 걸어야 한다. 나는 좀 뜸을 들이다 결국 아까보다 더 퍼붓는 빗속을 걸었다. 우산을 때리는 비가 무겁게 느껴졌다. 걷기만 하는데도 입에 신 침이 고여 몇 번 길바닥에 침을 뱉었다. 담배도 한 번 더 피웠다. 혹시 몰라 올라가는 길에 약국에서 소화제와 두통약을 샀다.

 


 식은땀에 젖은 채로 도착한 집은 정확히는 내 집은 아니었다. 저번 달부터 신세지는 아는 언니의 원룸이었다. 실은 그냥 아는 언니는 아니고, 나는 우리가 그냥 몇 번 자기만 했다고 생각했는데 언니는 좀 내 여자친구처럼 굴었다. 나도 언니가 싫지는 않아서 그냥 냅뒀다. ....여기서 나가면 당장 살 곳이 없기도 했다. 나는 푸근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흠뻑 젖은 우산을 신발장 옆에 기대놓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돌아왔지만 기왕 못 간다고 말한 거 알바는 그냥 쉬기로 했다. 몸이 따뜻해지자 멀미도 가라앉았다. 나는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전기 주전자로 물을 끓이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내가 깬 것은 언니가 돌아온 뒤였다. 밖은 깜깜했고 방 안에는 언니가 사온 치킨 냄새가 가득했다. 언니는 머리를 묶고 싱크대에서 치킨무를 뜯고 있었다. 좁은 신발장 앞에는 언니 우산과 내 우산 두 개가 펼쳐져 있었다. 언니가 내가 깬 것을 보고 치킨 박스를 뜯으라고 했다. 그 말대로 하려고 비닐을 걷는 순간 강한 치킨 냄새에 토기가 올라왔다. 나는 화장실로 뛰어가 변기를 붙잡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너 요즘 계속 그런다.”
 “그냥 체했나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생각해보니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체했다고? 거짓말 할 필요 없는데.”

 


 언니가 비웃듯이 말했다. 나는 가끔 이 언니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소리야?”

 


 언니는 못 들은 척 맥주캔을 뜯었다. 탄산이 토도도도도독 캔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에도 속이 울렁거렸다.

 


 “갑자기 뭐냐고?”
 “너, 생리 언제 했냐?”
 “뭐?”

 


 언니는 니가 여기 살고부터 한 번도 생리를 한 적이 없네 어쩌네로 시작해서 갑자기 자기를 좋아하는 건 맞냐고 신경질을 냈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울컥했다. 왜 자꾸 짜증나게 내 여친인 척 하냐는 말이 턱밑까지 올라왔다. 나는 구역질을 참듯이 그 말을 삼켰다. 그래 우리가 사귀나보다. 시발 나랑 얘랑 사귀는 건가봐. 그렇게 생각해봐도 내가 잘못한 건 없어 보였다. 이번 주 내내 언니한테 신경을 못 써주긴 했다. 그래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였다. 아무리 연 끊고 살았어도 엄마가 죽었다. 불쌍하게 생각해 달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뜬금없이 생리? 내 성격 지랄맞단 소리를 돌려서 하는 건가? 시발 뭐 어쨌단 거야?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는 욕이 튀어나왔고 언니는 눈을 무섭게 치켜뜨고 계속 내게 따져댔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둘 다 일어서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내가 몰라서 말 안 하는 거 같애?! 존나 괜찮으니까 말하라고.”
 “시발 뭘 말하는 건지 알아야 말을 하든 말든 하지, 혼자 알지 말고 나한테도 좀 알려주지? 뭘 아는데? 시발 뭐가 괜찮다고 지랄인 건데?”
 “너 재희새끼랑 잤다며! 매장에 소문 쫙 났던데!”

 


 나는 말문이 막혔다. 미친 어떻게 알았지? 아니 그래도 언니 집에 들어오기 전인데? 내가 멈칫하자 언니는 더 기세등등해졌다. 어떻게 했길래 매장 사람들이 다 아냐 존나 그렇게 좋아서 콘돔도 없이 했냐 지금 그새끼 애 배서 입덧하는 거 아니냐 별 개같은 소리를 늘어놓는 걸 듣다가 입덧이란 말에 정신이 들었다.

 


 “시발 무슨 입덧이야 이게! 존나 무식한 소리 할래!?”

 


 언니와 나는 다시 왁왁 거렸다. 나는 계속 안 잤다고 우겼다. 하는 말을 들어보니 언니가 뭘 제대로 아는 건 아닌 거 같았다. 하지만 결국 내가 졌다. 언니가 울음을 터트려서 그런 건 아니고, 아무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빌어먹게 입 싼 박재희랑 내가 잤든 안 잤든 언니가 진짜 뭘 알든 모르든 어쨌거나 이 집이 언니 집인 이상 내가 숙여야 했다.

 


 “임테기 사 오면 될 거 아냐!! 존나 아니기만 해봐!”

 


 나는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눈물범벅이 된 언니를 두고 집 밖으로 나왔다. 거리는 깜깜했고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두고 나왔는데 다시 돌아갈 수는 없어서 그냥 야상에 붙은 후드를 뒤집어썼다. 큰소리는 쳤지만 겁이 났다. 몸이 덜덜 떨렸다. 비 때문이었다.

 


 “시팔.”

 


 집에 오는 길에 소화제를 샀던 약국까지 뛰어갔는데 약국은 이미 닫혀있었다. 시발 8시도 안 됐는데. 의약분업인가 뭔가 하고부터는 약국들도 병원처럼 일찍 닫았다. 지들이 병원이야 시발? 밤에는 사람 안 아픈가. 응급실은 존나게 비싸게 받아 처먹으면서. 나는 시발시발 하면서 큰길까지 내려갔다. 이미 약국까지 뛰느라 숨이 차서 거기서부턴 그냥 걸었다. 다행히 빗줄기는 점점 가늘어졌다. 비를 맞아서인지 내리막길을 천천히 걷고 있어서인지, 아까보다 속도 많이 가라앉았고 머리도 식었다. 몸은 여전히 떨렸다. 후드에 떨어지는 가는 빗줄기 사이로 언니랑 싸울 땐 들지 않았던 두려움이 내 머리를 두드렸다.

 


 재희새끼가 마지막에 콘돔 없다고 그냥 하기는 했지. 그래도 시발 안전한 날이었는데. 진짜 임신이면 어떡하지? 수술비 얼마지? 아나 씹새끼 돈 안 주려고 지랄할 텐데.

 


 내 머리 속은 걱정과 욕으로 가득 찼다. 머리를 암만 굴려도 알바비를 가불받지 않으면 수술비가 안 나올 것 같았다. 언니는 모아둔 돈이 좀 있을 테지만 이 일로는 절대 한 푼도 빌려줄 것 같지 않았다. 아니 당장 쫓아낼지도 몰랐다. 아.. 아오 시발.

 


 큰길까지 내려갔더니 열린 약국이 있긴 있었다.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나오는데 약국 유리문에 잔뜩 일그러진 내 얼굴이 비쳤다. 다시 목에서 울컥하고 신물이 올라왔다. 짜증이 치밀었다. 약국 앞에 서서 잠시 심호흡을 했다. 별로 진정되지 않았다. 습관처럼 담배를 피우려고 입에 물었다가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그 행동 때문에 온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시발, 시발, 시발, 시발! 맞든 기든 어차피 지울 건데. 아, 존나 기분 더럽게, 시팔...

 


 나는 끝내 그 담배에 불을 붙이지 못했다. 대신 나는 물었던 담배를 손으로 구기고 발로 몇 번이나 짓이겼다. 몇몇 사람이 길바닥에서 쿵쿵거리며 지랄하는 나를 흘겨보고 지나갔다.

 


 이제 더 이상 과거의 그림자에 시달리실 필요 없습니다. 변호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지랄하네 사기꾼새끼. 나는 전혀 그 어떤 그림자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과거의 망령이 내게 저주를 건 것 같았다. 엄마처럼은 안 살겠다고 그렇게 도망치고 도망쳤는데, 나는 그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고스란히 그가 걸은 발자국 위에 서있었다.

 

 

 


 걸음마다 점점 더 무거워지는 발을 간신히 움직여 집으로 향했다. 걸을 때마다 땅으로 꺼지는 기분이었다. 비참해질 대로 비참해진 기분으로 집 앞에 도착해서야 다른 곳에서 확인하고 들어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발 멍청한 새끼. 내 멱살을 잡고 두들겨 패고 싶었다. 한참동안 눈을 꾹 감고 문 앞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맞은편 연립주택 복도에 누군가 나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면 더 오래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손이 꽝꽝 얼어서 문고리를 몇 번 헛돌렸다.

 


 문을 열자마자 치킨과 치킨무 냄새가 훅 끼쳤다. 언니는 문에서 등을 돌리고 노트북을 하고 있었다. 언니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나는 또 역해져서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나 왔다고 해 봤지만 그래도 언니는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포기하고 비에 젖은 야상을 대충 바닥에 놓고 임신 테스트기를 들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거울에 비친 나는 약국 유리문에 비친 나보다도 더 못 볼 꼬락서니였다. 전혀 춥지 않은데도 덜덜 떨리는 손으로 테스트기 포장을 깠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검사 방법을 몇 번이고 읽었다. 거기엔 3분 이내로 결과가 나온다고 써져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30초 만에 나왔다.

 


 “씨발.”

 


 울고 싶었다. 사실 조금 울었다. 한 줄이었다. 콧물이 나와 훌쩍거리고 있었는데 화장실 앞에 언니 인기척이 느껴졌다.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나는 물도 안 내리고 대충 바지만 꿰입고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문 앞에는 역시 언니가 있었다. 나는 언니를 와락 끌어안았다.

 


 “한 줄이야! 알아? 임신 아니라고 시발! 내가 진짜 잘 할게. 앞으로 진짜 진짜 잘 할게. 사랑해. 언니 정말 사랑해. 나한텐 언니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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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백합

기타 / 2015. 3. 20. 00:33

창작백합온리 여자친구전(@lily_comics)

 

발렌타인 이벤트에 응모했던 짧은 글.

주제는 '고백'이었음.

왜.. 글은 없고... 짤만 남아있는지 알 수가 없뜸...

 

그치만 이거 써서 이벤트 당첨돼서 초콜릿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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