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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사 크리스티 추리소설 중 '세인트 메어리 미드 타운'의 노부인 '제인 마플(통칭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책 13권을 읽고 씁니다.

 

 

 

 

 

목록

 

- 목사관 살인사건(1930)

- 화요클럽의 살인(13개의 사건)(1932)

- 서재의 시체(1942)

- 잠자는 살인(1976, 이야기 내적 시간 흐름 상 여기)

- 움직이는 손가락(1943)

- 살인을 예고합니다(예고 살인)(1950)

- 마술 살인(1942)

- 주머니 속의 호밀(1953)

- 패딩턴발 4시 50분(1957)

-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1960)

- 깨어진 거울(1962)

- 카리브해의 비밀(1964)

- 버트램 호텔에서(1965)

- 복수의 여신(1971)

 

(총 14권이지만 단편집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1960)'은 읽지 못함.)

 

 

 

딱 한 출판사를 정해서 읽은 게 아니라 가장 빠르게 구할 수 있는 각종 판본으로 읽음. 워낙 유명하니까 따로 링크를 달지 않음.

 

아 근데 이 리뷰를 쓰면서 제목 제대로 찾아보려고 검색 했다가 아직 읽지 않은 아가사 크리스티 책들의 스포를 왕창 당함. 미친 인간들아 추리소설 리뷰 쓰면서 스포 예고도 없이 다 까발리는 게 어디 있어. 아........................................................ 

 

 

 

이 포스팅에는 절대 스포가 없습니다. 스포방지도 없이 스포하는 인간들 다 내성발톱 돼라.

 

 

 

 

 

가장 재미있는 책은 '살인을 예고합니다'와 '주머니 속의 호밀'이었고 '깨어진 거울'과 '카리브해의 비밀'도 재밌었음.

 

'화요 클럽의 살인' 혹은 어떤 판본은 '13개의 사건' '13가지 수수께끼' 등등의 제목으로 출간됐던데 암튼 이건 약간 사건 단편집..? 비슷한 형식이라 13개의 사건 중에 적어도 한 두개는 읽는 사람 취향에 맞을 것 같음. 나는 단편 중엔 '방갈로에서 생긴 일'이 가장 재미있었음. 소제목이 이게 맞던가...? 순서상 거의 끝에 나온 사건인데 정확한 소제목을 찾기 위해 검색을 하지는 않을 것임. 이미 너무 빡치는 스포를 많이 당함....... 스포한 블로거 진짜 실직해버려라.

 

 

 

 

 

각 편에 대한 감상을 적기엔 스포가 들어갈 수밖에 없고, 딱히 그렇게 감상을 길게 적을 스토리들은 아니라서 그냥 13권을 한꺼번에 포스팅하기로 했다.

 

타임킬링용으로 슉슉 읽기 좋음. 사실 추리소설들은 다 타임킬링용이 아닐까? 각종 범죄와 빈번한 살인과 박진감 넘치는 추격씬과 감춰진 음모와 서서히 드러나는 인간의 추한 민낯을 나는 안전한 곳에서 읽을 수 있고,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책을 덮고 말랑말랑한 다른 책을 펼칠 수도 있다. 생각도 막 깊게 안 해도 됨. 책을 끝까지 읽기만 하면 문제는 풀리니까.

 

 

 

그리고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은 독자를 감정적으로 힘들게 만들지도 않는다. 어거지로 범행 동기를 짜맞추고 범죄자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이런 게 별로 없음. 아가사 크리스티 본인 생각이 그런 건지, 아니면 특히 미스 마플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시리즈 전반적으로 흉악한 사건이 반드시 엄청나게 숭고하거나 혹은 상상도 못하게 악랄한 이유 때문에 벌어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깔려있음.

 

(미스 마플에 따르면) 범죄 동기는 그렇게까지 다양하지 않다. 돈 아니면 자존심 아니면 사랑(을 빙자한 집착 같지만)이 원인이고 그것들이 따로 분류하지 못하게 엉켜 있는 경우도 있다.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편들에는 심리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게 매력의 전부는 아니고 문장 자체도 엄청 잘? 써서 그냥 별 내용 없는데 한 줄만 읽어도 눈물나게 좋고 재밌고 그랬음. 

 

 

등장인물들끼리의 심리전도 괜찮지만 독자와 벌이는 심리전이 진짜 재밌다. 가장 유명하고 가장 재밌는 책으로 꼽히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처럼 읽는 사람을 속이는 그런 거.

 

 

 

 

누구를 믿을 것인가?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누구고 속이는 사람은 누구인가? 속아넘어간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잘못된 진실을 믿고 있으며 진실을 본 사람은 누구인가? 누구의 감정이 진짜고 누구는 자기가 속은 줄도 모를 정도로 멍청한가....

 

진실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가 하는 말이 다 진실인 것은 아니다. 진실을 말하려고 해도 그 말에 진실만 담겨있지 않을 수도 있다. 

 

 

 

 

트릭은 훌륭한데 재미가 진짜 더럽게 없는 경우도 있었음. 굳이... 재미 없는 것의 제목을 말하진 않을 것이지만... 이야기에 담긴 인물들의 심리나 감정, 얽히고 풀려가는 관계, 이동하는 마음과 새로 그려지는 지형이 구리면 사건 트릭이 개쩔어도 재미가 없었다. 재미 있는 책은 (심리전과 별개로) 저런 스토리도 훌륭했음.

 

남자 너무 쓸데없이 많이 나와서 재미 없었던 책 제목은 말하겠음. '패딩턴발 4시 50분' 남자들이 하나같이 매력이 없는데 매력적이란 설정으로 나옴...... 

 

 

 

 

결말을 예측 가능한지/불가능한지와 재미가 없는지/있는지는 별개인 거 같음. 그리고 가끔 정말 이해 안 되는 설정빵꾸 같은 게 보이는데 그런 게 있다고 해서 막 반드시 몰입도를 해치고 재미가 없어지고 이렇진 않음. 읽으면서 아 이게 대체 왜 재밌지... 근데 재밌어....... 뒷내용 알 것 같은데 책을 못 놓겠어... 자야 되는데 못 자겠어.... 할 때가 많았다.

 

아 근데 재미 없게 본 편은 자꾸 트집잡고 싶어져서 설정구멍마다 의문 제기한다.

 

 

 

 

 

13편이나 몰아서 읽으면서 느낀 점은... 아가사 크리스티는 독자랑 하는 심리전에 강하다는 것이고 한 사람 글 스타일만 계속 보니까 대충 누가 범인이 확실히 아닌지는 알겠음. 어쨌거나 19세기에 태어난 영국 백인이라 계급주의,,, 레이시스트,, 은은한 여혐,,, 뼈헤테로.... 중매쟁이 결말.. 이런 것들이 (뒤로 갈수록) 점점 뚜렷하게 보이는데, 그게 내가 이 사람 책 하도 많이 읽어서 점점 더 잘 읽히는 것인지 아님 말년에 그런 성격을 글에 (더더욱) 감추지 않게 된 건지는 모르겠음. 좀 재수없지만 유럽 대륙인들 은근히 무시하는 건 좀 웃겼다. 이 영국인아ㅠㅋㅋㅋㅋㅋㅋㅋ 

 

 

 

 

안 좋았던 점도 같이 얘기했지만 그래도 백남이 쓴 책보단 소수자혐오가 덜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추천함. 글고 사실 재미 없다고 한 책도 재미가 막 너무 없지는 않음. 아가사 글 진짜... 어케 한 문장만 읽어도 '대체 이게 왜 재밌지?!?!?'할 정도로 잘 쓰는 바람에 재미의 기준 상향평준화 됨......

 

 

 

 

 

 

(사족) 달래된장 시작할 때 혼자 정한 목표가 '여자가 쓰고 여자가 주인공인 책 위주로 읽자'였는데 아직까지는 잘 지키고 있다.

 

 

Posted by 얼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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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달래된장. 6월 18일에 바쁠 것 같아 미리 작성합니다. 라고 해놓고 18일에 공개조차 까먹어서 28일에 공개합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573087

 

제목: XX: 남자 없는 출생(XX, 2018)

작가: 앤젤라 채드윅(Angela Chadwick)

이수영 옮김 | 한스미디어 | 2019-03-06 

 

와 드디어 트위터에서 인기 있는 책 읽음. 내용은 저보다 더 잘들 아실 거 같으니 아주 짧게, 레즈비언 커플이 난자-난자 인공수정 기술 임상실험에 자원해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기 직전까지 일어나는 각종 사건사고와 그로인한 생각과 관계의 변화 이야기. 구글 검색 결과로 책 장르는 판타지라네요. 아마도 난자-난자 인공수정 부분이 SF판타지겠죠...? 저는 좀 더 사회과학 소설처럼 읽었어요. 인간 행동양식에 관한. 

 

 

 

 

 

-

 재밌다. 자기 유전자를, 다른 누구도 아니고 굳이 '내 유전자'를 남겨야겠다는 집착. 나의 피와 살을 물려받은 '내 자식'이라는 관념. 임신과 육아에 대한 갈망, 부성애와 모성애...... 이런 것에 공감 못하는 사람이라(=내가) 책 읽기 시작할 때 그렇게까지 재밌게 읽지 못할 것 같았는데, 걱정했던 것보다 재밌었다. 자세하게 말하면 스포가 될 것 같고 아무튼 주인공(줄스)을 이렇게까지 깊이 이해하며 독서한 게 너무 오랜만이다. 원래 소설속 주인공 다들 응원하면서도 조금씩 미워하고 얘 대체 왜 이래 이러면서 이해 못하면서 읽잖아 나도 그렇고. 근데 줄스는 너무... 평소의 나였음... 다른 부분보단 임신과 육아와 유전자 전달에 대한 생각이. 

 

 

 

 지역 신문사 '여'기자 줄스(줄리엣)가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줄스에겐 20대 초에 만나 쭉 사귀는/같이 사는 애인 로지가 있고 로지는 임신하고 싶어한다. 육아만 원하는 게 아니라 정확히 '내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기르길 원함. 그 아이의 유전자에 본인이 사랑하는 줄스의 유전자까지 포함되어 있다면 더 좋고.

 

 지역 신문사 기자에서 여자임을 강조한 이유는 그 신문사가 전체적으로 여혐 기업(까지도 아닌 소규모지만)인데 여혐소리 듣기 싫어서 여기자 딱 두 명 고용하고 이런 언론사라서. 

 

 

 

 책 곳곳에 이런 식의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연구진이 거의 다 여자이지만 성난 언론을 상대하기 위해 얼굴마담으로 나서는 건 남자인 스콧이며, '우리 아들들'이 소수자가 되면 어떡하냐고 시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어디에도 현재 소수자가 누구인지는 들어있지 않다. 딸을 걱정하고 사랑하며 딸의 여성 파트너에게도 친절한 사람이지만 '정상' 가족의 환상은 다 버리지 못한 어머니와 딸을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판단력이 흐리고 무례한 약쟁이 아버지라든가.

 

 

 

 반대파들의 격한 반응은 내게는 약간 과장처럼 느껴지는데 정치인이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일부러 파장을 일으켰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근데 역시 좀... 난자-난자 수정해서 여자만 태어나는 게 뭐 그렇게까지 공포스럽지 하는 생각은 강하게 든다. 정자-난자 인공수정 기술 발전했다고 섹스 안 해온 것도 아니면서...... (라고 썼는데 글 올리기 직전에 깨달았다. 이거 그 좆부심이자 공포심인가. 남자들 스스로 자기 성기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한 나머지 그게 필요 없다는 말을 들으면 본인 전체가 부정당하는 것 같고 쓸모 없게 느껴지는. 예를 들면 여자도 지랑 똑같은 가치에 목맬 거라고 생각해서 모 영화의 모 히어로한테 "나는 자궁이 없어서 괴물이야" 소리를 하게 만든 똘추처럼.)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이 소설의 소재와 비슷한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수정 초기에 필요한 에너지원(?)이 난자에 몰빵돼 있어서 정자끼린 애 못 만들어도 난자끼린 가능하다고. "그럼 태어나는 애들은 다 XX염색체거나 XXX염색체겠죠?" 당시 생물 선생님은 사심없이 이렇게 말했고 남자애들도 여자애들도 별 반응이 없었다ㅋㅋㅋㅋ 그냥 수업 중간에 (시험과 관계 없는) 딴소리 타임으로 받아들였지.. 실제로 아빠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나? (육아를 배제한) 부성애에 환상을 가진 사람들은 있는 거 같긴 한데 사실 그건 본인의 노후 대책하고 관련이 더 큰 문제 아닌가. 모를 일이다...... 

 

 

 

 

 줄스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인데도 약간 TV화면이나 CCTV 보듯이 읽었다. 줄스의 행동과 사고보다는 주변 인물들과의 갈등, (구체적으로는 나오지 않는) 세계와의 갈등, 그에 대한 반응과 대응에 초점이 맞춰져서 그런 것 같다.

 

 

 

 주변 인물과 줄스의 관계가 입체적이라 좋다. 알 수 없는 타인의 생각, 납득할 수 없는 행동, 알아도 이해하지 못할 타인의 감정, 이런 것들이 끝까지 줄스에게 미지의 세계로 남는데, 어차피 현실도 다 그렇게 사니까 몰라도 상관 없다.

 

 

 그런데 줄스에게 계속 미스테리라는 것이지 독자에게는(적어도 나한테는) 인물들이 별로 어리둥절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줄스 시선으로 세계를 보는데도 이렇다는 게 신기하지만ㅋㅋ 아마도 캐릭터들이 유형화 되어 있어서 그런 거 같다. 특히 남캐들이 약간 현실에서 유형별로 추출된 느낌이라 풍자를 위해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것인지 아님 너무 현실적이면 극혐이라 제거하고 제거해서 남은 게 이정도인지 모르겠는. 

 

 

 

 

 이 책에 나오는 언론 조작 내지는 선동과 과격파 보수의 반응 이런 것들이 현실적이라 답답했다는 후기도 있던데 나는 글쎄 평소에 늘 최악을 상상하며 살아서 그런가 아님 상상 그 이상을 해버리는 케이언론을 많이 봐와서인가 소설로 읽기에 이정도는 그냥저냥 괜찮았다.

 

 

 놀랍게도 프라이어(난자-난자 인공수정 기술에 반대하는 입장을 선거 유세에 이용해먹는 정치인)는 별로 짜증나지 않았다. 시종일관 여혐을 똘똘 뭉쳐서 줄스에게 던지는 매튜도... 아니 매튜는 좀 싫었는데 그냥 픽 하고 줄스의 인생에서 꺼져버린 부분이 우스워서 마음에 들었음. 언론의 태세가 반전되는 상황(스포라 자세히 적지 않음)도 우스웠다. 이 부분은 거의 작가의 해피엔딩에 대한 낭만과 욕심이 들어간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주 매우 좋은 결말인데ㅋㅋㅋㅋ 하지만 그때쯤 나도 소설 속 인물들처럼 물러져서 아무렴 어때 하면서 책을 덮었다. 아 정말... 행복해라......

 

 로지의 절친한 남사친 앤서니도 로지에 비하면 덜 짜증났다. 아니 로지... 나는 로지를 줄스의 눈을 통해 보니까 분명 사랑스러워야 마땅한데 너무 중산층 집안에서 곱게 자란 나이브하고 해맑은 사람 티가 팍팍 나서 차라리 앤서니가... 아니다 얘도 싫어 나에겐 애비(여자사람이름임.) 뿐이야......

 

 

 

 

 상황이 좀 답답하게 느껴지더라도 책이 얇고 결국엔 어쩔 수 없이 해피엔딩(?)이니까 고구마는 오래 가지 않는다. SF 부분은 짧고 그 가정에서 촉발되는 사건들은 현재하는 현실이다. 작가는 열심히 실존하는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뒤집고 뒤집는다. 그 보수성에는 '자연스러운 임신' 옹호에서부터 이성애자들의 호모포빅한 발언, 정상가족 추구, 미소지니 등이 포함되어 있고, 마지막에는 혈연과 혈육에 대한, 유전자 전달에 대한 집착까지도 꼬집는다. 솔직히 이 마지막 파트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이 책을 좋아하지 못했을 것 같다.

 

 

 

Posted by 얼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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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달래된장! 18일에 마감을 맞추지 못해 28일에 공개합니다... 지각 ㅈㅅㅈㅅ

근데 티스토리 왜케 글 쓰는 화면이..... 광활해졌죠? ㅁ뭐야 적응 안 돼,,,, 그리고 키보드에 쉬프트키가 말썽이라 쌍자음이 잘 안 쳐집니다 오타 양해 ㄳ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4303475

제목: 살인의 역사(Case Histories, 2004)

작가: 케이트 앳킨슨(Kate Atkinson)

역자 임정희 | 출판사 노블마인 | 2007.11.30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 아이의 실종, 뜻하지 않은 불행한 사고, 그리고 우발적인 살인. 
30여 년간 한 마을에서 벌어진 세 가지 사건 뒤에 숨겨진 수수께끼. 
시간의 그늘에서 참혹하게 희생된 여인들에게는 어떤 비밀이 숨겨진 것일까? 
조용한 마을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뒤쫓는 사립탐정 잭슨 브로디의 사건기록.

 

 

극찬에 별로 신뢰도는 높지 않은 다독왕 스티븐킹으로부터 극찬도 받았다고 하네요.

 

책이 재미 없진 않습니다. ㅋㅋㅋㅋ 한국어 제목과 표지에서 느껴지는 어떤... 기대한 무언가를 읽지 못했을 뿐... 찾아보니까 출판사나 판매처에서 적어둔 책소개 설명하고도 아주 살짝 포인트가 다른 느낌. 아무튼 주인공 브로디 잭슨이 등장하는 첫 번째 시리즈이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는데 전혀 몰랐네요. 걍 제목 보고 재밌어 보여서(+작가가 여자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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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추리소설을 아주 좋아하고 범죄스릴러도 범인이 구질구질하게 짜증나는 놈만 아니면 재밌게 읽는다. 근데 이 책은 그런 거보다는...... 음 원제인 Case Histories가 책의 속성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거 같음. 소설 전반적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추리를 위해 흥미진진한 떡밥을 던지거나 하는 시도는 거의 없고, 사건 기록일지를 말투만 약간 친근하게 바꿔서 읽는 느낌.





 주인공이 고생을 좀 하긴 하는데 그거엔 별로 관심도 안 쏠린다. 주인공 탐정이 남자라 그런가...? 치명적이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드는 조잡한 위협으로 읽힘. 전체적으로 건조하고 차분한 분위기인데, 주인공이 본인 딸 문제 빼고는 별로 호들갑 떨지 않아서 더 그렇게 느껴진다. 그리고 아주 슬프다. 연민은 아닌 거 같다. 눈물도 안 나고 그냥 마음이 무겁게 슬프다.













 책은 세 가지 사건기록으로 시작한다. 어떤 지역에서 몇 십년에 걸쳐 일어난 실종/살인 사건들이며 두 건은 미결, 한 건은 현장 체포되었다. 피해자와 가해자 중 최소 어느 한 쪽은 여자다. 이 책은 비극을 맞은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현재의 이야기가 시작될 때 사립탐정 브로디 잭슨(전직업 형사)은 들어온 일이 의처증 걸린 자산가의 의뢰 밖에 없어서 그 부인인 스튜어디스를 미행 중이다. 그런 잭슨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의뢰가 들어온다. 의뢰인들은 책 초입에 나열된 세 사건에서 남겨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제각각 그날의 진실을, 아직도 잡지 못한 범인을, 사건 이후 연락두절된 사람을 찾아달라고 한다.











 배경이 작은 마을이라는데 나는 영국은 모르니까... 뭐 얼마나 작은진 몰라도 의뢰인들끼리 직접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거나 마주친 적이 있다. 잭슨은 일을 가릴 처지가 아니라서 들어오는 모든 의뢰를 맡는다. 그리고 모든 사건을 동시에 수사한다. 원래 이게 사람이 일하고/세상이 굴러가는 방식이겠지만 책으로 읽으려니까 조금 정신 없긴 하다. 근데 사람 이름만 잘 외우면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다.





 잭슨이 과거의(가장 오래된 사건이 아마도 30년 전?) 진실을 좇는 게 책의 큰 흐름이긴 하지만 이건 절대 추리소설이 아니다... 진실이건 범인이건 점진적으로 단서를 따라 밝혀지지 않고 그냥 한순간에 어처구니 없게 해결된다. 사건 당시 경찰들은 뭐한 거냐는 소리가 저절로 나옴. 아니 근데 내가 자꾸 추리에 집착해서 그렇지(그걸 기대하고 읽었으니까...) 이 책이 재미 없다는 건 아니다;;



 인간과 인생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물 간의 '관계'도 아니고 딱 이 세상과 그 속에 사는 여자의 인생에. 사실은 사건의 진실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건은 여자들의 인생이 어떻게 그렇게 흘러갔는지, 그 흐름에 들어가기 위한 입구일 뿐이고, 드러난 범죄를 수사하는 중 드러나지 않았던 일까지 들춰진다. 











 아까도 그리고 방금도 썼지만 이 책은 여자들의, 그리고 여자의 삶과 생활에 대한 이야기이다. 산후우울증, 여아 실종, 무차별 혹은 무차별로 보이는 칼부림 사건으로 죽은 여자, 신고되지 않아 아무도 존재조차 모르는 범죄, '아직' 또는 '운 좋게' 실행되지 못한 크고작은 여성 대상 범죄들. 아무것도 세세하게 소개되지 않는다. 그냥 그런 게 있었고, 읽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뿐이다.









 줄리아와 아멜리아와 실비아는 지금처럼, 혹은 지금보다 약간 더 낫게 지낼 것이다. 캐롤라인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나오지 않는다. 셜리의 의뢰는 불발되었다. 로즈릴리는 행복할 것이다. 테오는 괜찮은 사람이다. 밀리는 좋은 사람을 알아볼 줄 안다. 남은 사람들은 정말로 괜찮을 것이다. 





 그럼에도 슬프다. 모든 비밀을 알게 되었어도 개운하지 않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 작가가 사건의 전말을 그저 의무감에 기록한 것이란 느낌마저 든다. 케이스 종결을 위해, 이 기록에 종지부를 찍고 파일을 덮기 위해. 하지만 그것이 슬픔에까지 마침표를 찍어주지는 않는다.





 사건은 복잡하지 않다. 서로 근거리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이지만 톱니처럼 맞물려 있지도 않다. 트릭도 없다. 그냥 현실적이다. 세세하고 구차한 묘사가 제거된, 깔끔한 비현실에서 구현된 현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혹은 우리는 이미 글자가 없는 부분까지 알고 있다. 독자가 안다는 것을 작가도 알고 있기 때문에 생략했지 싶다.













 잭슨 시리즈의 다음권은 안 읽을 거라 전체적인 건 몰라도 이 책 한 권의 내용은 잘 깎은 미니어처 같다. 쓰레기가 굴러다니더라도 제작자가 그곳에 일부러 놓아두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정교한 미니어처 골목길. 아마 그래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지만. 읽으면서 슬프고 마음이 착잡했는데 딱히 눈물은 안 났고, 이 책을 덮은 뒤 가장 마음 깊이 남은 교훈은... 길고양이에게 잘 해주자.















 

 

 

 

 

 

 

 

Posted by 얼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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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제출부터 펑크의 위기를 겪었어요. 그래도 세 번까진 어렵지 않게 참여할 줄 알았는데,,, 근데 이 감상문 아주 길어질 것 같아요. 사실 이 책 저에게 너무 복잡한 심경을 들게 해서 달래된장에 쓰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읽은 책(과 팬픽) 중에 감상문 쓸 만한 책이 이것 뿐이라..(구구절절 눈물맨) 바쁜 분들을 위해 후반부에 굵은 글씨로 요약을 해뒀습니다,,, 재밌어요 읽으면 좋아요..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241624

제목: 실화를 바탕으로 (원제 D'après une histoire vraie, 2015)
작가: 델핀 드 비강 (Delphine de Vigan)
역자 홍은주 | 출판사 비채 | 2016.10.31



 

 


 이 책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갑분국어시간 ㅈㅅ. 하지만 이 책에선 이게 주요한 트릭 중에 하나로 작용해요.

 


 주인공 이름은 작가와 철자까지 똑같고, 작가 델핀도 주인공 델핀처럼 구불거리는 긴 금발머리를 가졌고, 이제 막 성년에 접어든 두 아이를 키우고 있으며 파리에 살아요. 그리고 주인공 델핀과 작가 델핀 모두 데뷔 소설로 자전적 소설을 냈고, 그 이후에는 (순수)픽션만 쓰다가, 이야기의 무대이자 독자의 손에 들린 책인 '실화를 바탕으로'를 내기 직전에 두 번째 자전적 소설-어머니가 자살한 현장을 (소설 속의 소설의) 주인공이자 (소설 속의) 작가가 직접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을 출간했어요.



 소설에 현실의 설정을 뒤섞고 1인칭 '나'의 목소리로 과거를 회상하고, 후회하고, 자신의 수치와 감정을 고백하는 말투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해요. 더 몰입할 수 있게, 소설 속의 '나' 델핀과 작가 델핀의 경계가 흐려지도록.

 

 



 제가 델핀이라는 작가를 '실화를 바탕으로'로 처음 알지 않았다면 소설 속의 내용을 적어도 한번쯤은 '진짜' 같다고 느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밌는 설정이죠. 이게 작가가 말하고 싶어하는 주제/ 혹은 던지고 싶은 화두와 관련이 있고요.


 픽션과 사실의 경계, '실화를 바탕으로'한 작품을 좇는 독자들, 시청자들, 끊임없이 "그래서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짜죠?"라고 묻는 목소리들,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 그에 대한 창작자의 대답과 태도는 또 어떤지.



 말이 나온 김에 그냥 밝혀두자면 저는 이 책이 전혀 실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캐릭터의 성격이나 특정 장면, 특정인의 반응 등등은 현실에서 차용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이 이야기는 몇 퍼센트나 실화냐'고 물을 수 있게 만들진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후기나 감상 쓸 때 최대한 결정적 스포나 그냥 스포를 언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긴 하는데 어쩌다 스포를 할지도 모르겠어요.





 

 

 

 



책소개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델핀 드 비강 장편소설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은 작가와 이름이 동일한 주인공 '델핀'이 몇 년 동안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회상하며 시작한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전작의 엄청난 성공으로 인한 부담 때문일까. 그녀는 단어 하나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그때, 괴로워하던 그녀 앞에 나타난 자신과 너무나 닮은 여자 L. 직업도, 영화에 관한 취향도, 심지어 소녀 시절에 열광하던 스포츠 스타까지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 델핀은 L에게 급격하게 끌리게 되는데…. 



 위 책소개를 읽으면 제가 뭘 기대하고 이 책을 읽었는지 아실 것 같겠죠... 하지만 저는 백합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진짜로.


 책 '실화를 바탕으로'는 영화 '실화(원제는 소설과 동일 D'apres une histoire vraie, 2017)'로도 만들어졌는데 주요 등장인물 L 역에 에바그린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 책을 고른 건 맞아요. 하지만 전 정말로 여캐여캐러부러부 같은 걸 기대하며 책을 펼치진 않았어요... 근데 델핀이 L을 묘사하는 방식-매력적이고 우아하고 당당하고 섹시하고 여성스럽고 매혹적이고 딱 나의 이상향이고 어쩌고 등등-에서 너무 섹텐이 느껴진 나머지는 저는 얘네 둘이 곧 ㅅㅅ할 것 같다고 생각을 해버렸고(안 합니다.)


 




 저는 흥미진진한 심리스릴러를 기대했습니다. 어째선지 (자전적)소설을 기대치 않게 히트친 작가의 우울증 진행 과정을 읽고 있었지만. 심지어 목차가 없는 이 책의 2부 소제목은 '우울'입니다. 아니 정말로 목차조차 없어요 책 어디에도 없어 인터넷에도 없어... (참고로 적자면 1부 매혹(!!), 2부 우울, 3부 배반.)



 3부쯤 가면 제가 기대한 스릴이 느껴지긴 하지만 이미 주인공도 독자도 지친 상태. 2부 읽는 중엔 굉장히 속은 기분이었는데 게다가 우울증 묘사가, 수위가 쎄진 않은데 한번쯤 해봤던 생각/경험해본 일들이 나오고 1인칭 시점이라 몰입이 쉽게 됐어요(적어도 저는).


 돌이켜 생각했을 때 하루와 다른 하루를, 이번 달과 저번 달을, 사건의 이전과 이후를 구별해내지 못하는 불투명한 기간. 내가 무엇을 하며 존재했는지 그 누구도 증언해주지 않고 기록도 남아있지 않으며 내 기억에서도 건져낼 게 도무지 잡히지 않는 뿌연 나날들. 비이성적인 고민에 사로잡히지만 1초 뒤엔 내가 어떤 생각에 집착 중이었는지도 까먹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그저 서성이며 시간을 죽이는 게 전부인 일과. 

 



 솔직하게 말하자면 읽다가 (제 개인적인 사건이 생각나서) 너무 갑갑하고 짜증나서 몇 문단은 통째로 건너 뛰기도 했어요. 이게 자전적 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고 1인칭 시점이고 심지어 작가가 글을 잘 써... 말빨이 좋음....... 읽다보면 후루룩 휘말려버리는 기분.....

 그치만 책 읽는 중간중간 밥도 먹고 과자도 먹고 산책도 하고 잠도 자면서(고작 400쪽 짜리 책인데) 끝까지 읽고 다시 생각해보니까 별로 심한 묘사는 없어요. 혹시 읽으실 분들 참고 하시라고.

 

 






 주인공 델핀이 마주친 여자 L은 말하자면 델핀에게 가스라이팅을 합니다. "너는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데, 그 말의 진위를 알아보면 결국 "너는 (내가 말하는 것만) 할 수 있어."가 돼요. 이건 "넌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해." 더 나아가서 "너는 내가 원하는 이 일 외에는 아무 것도 못해. 왜냐면 너는 쓸모 없고, 너를 위하고 걱정하는 '진짜 친구'는 나밖에 없거든."이 되는 평범하고 뻔하고 투박한 가스라이팅이에요.(물증은 없지만 델핀의 주장대로면 스토킹도 수반됨)

 



 책을 읽다보면 델핀이 L을 만나서 점점 잠식되어가며 우울해지는 것으로 나오는데, 사실 선후관계를 모른다는 게 정확할 거 같아요. 델핀의 우울에 L만큼이나 기여하는 '익명의 편지'를 L이 보낸 건지 아닌지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끝까지 읽다보면 '델핀의 말(=소설 속 델핀이 썼다고 설정되어 있는, 하지만 현실의 델핀이 썼고 현실의 독자인 내가 읽고 있는 이 소설 내용)'이 전부 사실(=소설 속 사실)인지 아닌지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델핀은 꾸준히 자기가 L을 만나기 전부터 자신이 얼마나 타인 앞에서 삐그덕대고 그들 사이에 잘 섞이지 못하는지,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길게 설명합니다. 델핀이 심각하게 이야기해서 그렇지 사실 그냥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불안 같은데, 델핀은 본격적인 '우울(2부)'에 접어들기 전 1부에서부터 그걸 세세하고 구구절절 설명하죠. 마치 무언가를 변명하려는 것처럼. 자기가 왜 L에게 얽매일 수밖에 없었는지 왜 매혹될 수밖에 없었는지 당위성을 부여하고 싶은 것처럼. 그런데 동시에 '나는 그냥 피해자다'라고도 주장한단 말이예요.



 이런 모순되고 구구절절한 자기변명 부분이 델핀이라는 더 입체적으로 만들고 캐릭터를 '진짜'라고, 이 캐릭터에게 일어난 일도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이 이야기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진짜인지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것 자체는 중요해요. ㅎ,,, 말장난 같죠,, 프랑스 소설 읽고 이렇게까지 프랑스적인 독후감을 쓸 줄은 몰랐는데.....



 작가 델핀이 등장인물들을 입을 빌려서 직접적으로, 혹은 이 소설의 세계를 조형한 방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같아요.


 '실화를 바탕으로'한 팩션이 더 많은 인기를 끄는 것,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꾸며진 이야기는 실제하는 현실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믿는 것, 하지만 픽션을 읽든 팩션을 읽든 사람들은 언제나 꾸준히 이 이야기의 어떤 부분이 '진짜 사실'일지 궁금해 한다는 것, 그것을 알아내기 위한 의심이 합리적이라고 믿는 것, 질문을 서슴지 않는 것, '현실'을 하나의 이야기로 보고 진실을 파헤치는 것, 그 과정에 남겨지는 상처는 신경 쓰지 않는 것.

 







 L은 소설은 이제 허구만을 써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그 자리는 영상매체에게 빼앗겼다고, 소설의 가치는 오로지 현실과 진실을 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주인공을 세뇌시키려고 해요.


 주인공은 L에게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확고한 것은 아니에요. 주인공은 자전적 소설이 히트친 뒤 쏟아지는 관심이 작가 자신 그 자체에, 작가가 얼마나 소설의 주인공과 일치하는지, 이 소설은 몇 퍼센트나 진실인지 궁금해하는 그것들에 질린 상태로, 다음 소설까지 자기 과거를 깎아 팔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요.

 



 L이 끝없이 '진짜'를 써야 한다고 우기고 주인공 델핀은 자기 생각에 당위 보다는 '그냥 픽션 쓰고 싶다'는 선호가 앞선 상태인데, 그 상태에서 L은 델핀이 편한 길로 퇴행하려 한다고 아주 강하게 비난까지 해요. 그러면서 주인공 델핀의 우울증은 악화되고 L의 술수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고립되고 L에게 더 의존하게 되고 블라블라블라...







 저는 이미 이 문제에 너무 확고한 제 생각이 있어서 L과 델핀의 공방이 별로 혼란스럽지도 딱히 흥미롭지도 않았고.... L은 지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인지 고까웠고,,, 좀 더 치밀한 심리전을 보고 싶었는데 L이 생떼 쓰는 거 읽는 기분이었고,,


 하지만 L의 얼굴이 에바그린이라고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영화에서 L이 에바그린이라 무의식적으로 상상한 건데 효과가 굉장히 좋더라고요. 앞으로 읽어야 하는데 등장인물 짜증나서 안 읽히는 책이 있으면 종종 써먹을 예정.






 현실과 픽션과 소설가의 역할에 대한 제 생각을 적자면 저는 L의 말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개소리라고 생각하고,,, 현실이 현실이기에 갖는 힘이 분명 존재하긴 하나 재구성을 통해 이야기되기 전까지는, 혹은 잘못 재구성되었을 경우에는 그만한 파괴력을 갖지 못해요. 재구성이라는 것은 이야기가 타인에게 전달될 때 피할 수 없는 필수과정이기도 하구요. 픽션이든 실화든, 그건 피할 수 없어요. 처음에 진실이었던 것도 말해지고 전해지고 쓰이며 한번 혹은 수차례 왜곡되고, 읽히고 이해되고 내재되며 다시 수차례 왜곡돼요.


 등장인물들의 대사를-대사의 완성도와 논리성을- 보면 작가 델핀도 L에게는 동의를 하지 않는 것 같고요.






 3부는 이야기의 결말이자 말만 꺼내도 스포가 되므로 한 줄만 적자면, 끝이 그렇게 날 것을 아주 확신하고 있었는데도 끝을 읽고는 소름이 돋았어요.

 

 





 여기까지 요약:
 심리스릴러인 줄 알았는데 우울증 진행과정인 줄 알았는데 심리스릴러가 아니진 않았고 스릴러 겸 액자식 구성...?인가 암튼 현실의 틀-픽션의 틀이 겹쳐지고 꼬이는 서술방식을 통해 현실과 픽션의 관계에 의문을 던지는 책이었음. 형식만이 아니라 내용에서도 같은 의문을 직접 던져서 내가 쓴 것만큼 두서없지 않음...ㅠ 책표지에도 적혀 있음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일까?"






 저는 델핀이라는 작가를 몰랐기 때문에 작가가 공들여 설명한 주인공 델핀의 모습을 보며 딱히 현실과 혼동하지 않았고... 제 관심사는 '그래서 (작가가 상정해둔) 이 이야기의 진상은 무엇인가?'예요. 소설 구성 방식을 봤을 때 작가한테 물어도 절대 대답하지 않을 것 같지만...



 L의 실체는 무엇이었나? 델핀에게 일어난 일은 정확히 무엇인가? 이 소설을 가장한 고백문을 쓴 것은 '진짜로' 누구인가? L은 어느정도까지 상황을 예견했는가? 혹시 남자친구가 옳은 것 아닌가? 하지만 그러면 ~~~와 ----는 어떻게 설명하는데? 

 전혀 다른 스토리와 전혀 다른 분위기지만 '파이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진실은 무엇인가? 하지만 이것은 픽션이므로(저는 절대 이게 픽션일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으므로) '진실'이 무엇인지 묻는 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 허구 속 진실은 무엇인가? 이렇게 질문을 바꾸면 질문한 스스로가 우습게 느껴지구요. 어차피 허구인 이야기에서조차 뭐가 '진짜'인지 찾고 있다는 게.


 이 가짜 이야기 속에서 진짜는 어디까지고 가짜는 어디서부터인지, 작가가 던진 '현실과 픽션의 경계는 어디인가?'에 더해 질문이 하나 더 떠오릅니다. 현실과 픽션의 경계가 그렇게 중요한가?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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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된장'은 트친분이 기획한 '한 달에 한 번 독서감상문 올리는 소모임'의 이름이고, '비밀결사 독서모임'이라고도 합니다. 매달 18일에 비밀결사대원들(서로도 누군지 모름)이 감상문을 올리기로 했고 강제성도 정해진 형식도 분량도 없으며 원한다면 8일과 28일에도 추가로 감상문을 올릴 수 있습니다.

읽겠다고 사놓고/담아두고 (이런저런 이유 또는 핑계로) 안/못 읽은 책을 읽겠다는 게 모임의 취지이(ㄴ 것 같으)며, 그냥 '읽었다!' 하고 끝내는 것보단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성취감도 더 느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책을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아 감상문을 쓰기로 했습니다(사실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도 이런 이유라고 읽었던 거 같음).






하핫^^ 첫 모임 날짜가 3월 18일이라지요,,,, 꽃 피는 춘삼월@}---의 생동이 시작되는 좋은 날 좋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늠늠... 좋네요^^ 모임 이름도 센스 캡숑짱이지요 여윽시 뭐니뭐니해도 달래무침엔 된장이에요~~~~~~ 이런 기막히게 끝장나는 활동을 기획해주신 소모임장 홉모님께 심심헌.. 감사의 말씀을 올리면서! 감상문을 시작해보도록,, 허겠습니다,,,ㅎ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263281

제목: 가든 파티 (원제 The Garden Party and Other Stories, 1922년)
작가: 캐서린 맨스필드 (Katherine Mansfield)
내가 읽은 판본: 한은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04-16

구글 도서검색 결과로 전문이 나온다. 난 종이책을 선호하지만 전자책이 편하다면 그쪽도 추천.

캐서린 맨스필드는 동시대 동료 (남)작가에게 '약간 페미'라는 칭호를 하사 받은 단편 소설 작가로 완전 페미 버지니아 울프와 교류가 있었다고 합니다.(서문에 이렇게 나옴. 근데 책 다 읽기 전에 서문 읽지 마세요. 로나 세이지가 쓴 서문('내가 쓰는 모든 것은 나의 존재다,' 1997)이 책 맨 앞에 나오는데 미친듯이 내용 스포 해놓음. 몇 구절은 스포가 너무 심해서 감상을 방해할 정도였음. 서문이 아니라 그냥 이 사람도 독서감상문 쓴 거 같음.)




캐서린 맨스필드는 단편 소설 작가이고 이 책에는 1920년에서 1922년에 걸처 잡지에 게제된 단편 15편이 실려있다.



첫 번째로 나오는 단편 '만에서'는 좀 지루하고 길었지만 다른 단편들은 전개가 빠르고 짧고 밀도가 아주 높거나 혹은 장면 위주라 지루하지 않았다.


제일 좋아하는 단편은 '항해.' 함께 배를 타고 떠나게 된 어린 여자아이와 할머니가 등장한다. 대체로 아이의 시선으로 진행되며 아이의 눈을 통해 보는 세상의 작고 사소한 디테일들이 사랑스럽다.



​천진하고 인생의 그늘 같은 건 금세 잊어버리는, 이제 막 틴에이지에 접어든 여자아이가 나오는 '첫 번째 무도회'도 재밌었다. 




'이상적인 가족'과 '하녀'는 나이듦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하여, 나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에 대하여,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에 대하여. 


'죽은 대령의 딸들'은 위와 같은 맥락이면서도 분위기가 독특하다. 평범하게 요약하자면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평생을 살던 두 딸이 자신들의 보호자이자 억압자였던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야기인데, 맨스필드는 이걸 아주... 매력적이면서도 안타깝게 썼다. 읽으면서 처음엔 좀 웃겼는데 다 읽고 보니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아무튼 산 자는 죽은 자를 극복하고 자기 인생을 살겠지만.


'죽은 대령의 딸들'이 살아있는, 혹은 살아남은 자들의 다음 단계, 앞으로의 인생을 희망하게 한다면, '마 파커의 일생'은 그저 슬프다. 이 단편에는 '살아남은 자'보다 '남겨진 자'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남겨진 자는 왜 남겨져야 했는가. 우리는 왜 상실을 경험해야만 하는가. 


감정과 사고가 꾹꾹 눌러 담겨 있어서 하나 읽고 바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가 힘들 때도 있었다. 책 전체 분량이 많지 않고, 각 편의 길이가 짧은데도 다 읽는 데에 거의 일주일이 걸렸다. 맨스필드의 이야기에는 인생의 편린이 아주 빼곡히 차있다. 글자 수는 중요하지 않다. 짧은 글에서도 삶의 다양한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읽는 사람마다 공명하는 지점이 (당연히) 다르겠지만 나는 죽음과, 누군가의 죽음에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남겨지는 사람과, 결국엔 모두가 끝을 향할 수밖에 없는 방향성을 가장 깊게 읽었다.



내가 무거운 얘기에 더 감명 받아서 그렇지 어두운 얘기만 있진 않다.


아까 말한 '첫 번째 무도회'도 있고, 순수한 감정, 또는 애정을 담은 '현대식 결혼'과 '비둘기 씨와 비둘기 부인'도 아주 귀여웠다. 


새침하고 다 큰 것처럼 굴지만 아이일 뿐인 '어린 소녀'도 좋았다. 화자인 '나'가 무턱대고 어린 소녀를 귀여워하지 않아서 더 좋았다. 이 귀여운 이야기에서 결국엔 개인이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참담함을 느꼈다고 하면 내가 너무... 비극을 사랑하는 것 같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걸 느꼈다. 




슬픈 이야기든 밝은 이야기든, 분위기가 무겁든 익살스럽든, 맨스필드가 쓴 사소하고 현실적인 행동 묘사와 그에 따라오는 직,간접적 감정 묘사가 사랑스럽다. 마음이 푸근해지는 사랑스러움이라기보다는 심장을 얇게 저미는 류의 사랑스러움.





목차

1.만에서  2.가든파티  3.죽은 대령의 딸들  4.비둘기 씨와 비둘기 부인  5.어린 소녀  6.마 파커의 일생  7.현대식 결혼  8.항해  9.브릴 양  10.첫 번째 무도회  11.노래 수업  12.낯선 사람  13.은행 휴일  14.이상적인 가족  15.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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