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세진] 공모 3-1
3편이 예상보다 길어지는 중이라 늦었어요,,, 한 편은 텀 길지 않게 올리고 싶었는데 3-2는 좀 늦어질지도 모르겠어요..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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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왔냐? 오늘은 좀 잘 숨었다?”
“아! 야, 너, 좀, 기척 좀 하고 다녀! 간 떨어지겠네. 아오.”
세진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자, 하품하던 탁이 놀라 핸들에 무릎을 박았다. 세진은 무릎을 문지르며 징징대는 탁에게 간식거리를 안겨주고 조수석 의자를 뒤로 밀어 다리를 편하게 쭉 뻗었다. 이경과의 거래 이후 세진의 바쁜 일과에 추가된 한 가지는 학교 근처에 잠복하고 있는 탁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처음 공사장에서 만났을 때부터 쟤, 너, 야, 하며 반말을 쓰는 탁에게 세진도 진즉 말을 놓아서, 대화만 들으면 둘은 꽤 친해보였다.
“나 왔다~ 하면서 오면, 마중이라도 나오게?”
“아니. 빨리 튀어야지.”
“너 솔직히 말해봐. 사실 숨을 생각이 없지? 어떻게 맨날 들켜?”
“야 내가 원래는... 원랜 안 이래. 아 이거 정말... 너야말로 솔직히 말해봐. 나한테 추적기 같은 거 심었어?”
세진이 어처구니없다는 웃음을 터트렸다.
“너를 왜?”
“근데 어떻게 이렇게 바로 찾아내? 아니지, 애초에 나 일하는데 왜 찾아오는 거야?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
“나 오면 너도 좋잖아, 아냐?”
이번에는 탁이 실소를 흘릴 차례였다. 손으로 턱받침까지 하고 묻는 세진에게 탁은 고개를 저어보였다.
“좋겠냐.”
“그래도 내가 맨날 간식도 갖다 주잖아.”
“이 차에서 뭐 먹으면 안 된다니깐.”
탁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세진이 사온 피자빵과 카스테라를 양손에 들고 뭘 먼저 먹을지 고민하듯이 번갈아 봤다.
처음 세진이 잠복하는 탁을 찾아낸 건 우연이었다.
사실 완전 우연은 아니었다. 탁이 내는 특유의 바람소리를 들은 건 우연이었지만, 혹시나 탁을 대동한 이경이 근처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굳이 학교 주변을 이 잡듯 탐색한 건 우연이라고 할 수 없었다.
탁을 찾아내고 탁이 혼자인 것을 알았어도, 세진은 조금 기대하고 있었다. 이경이 저를 감시하라 보낸 것이 아닐까하는, 객관적으로 볼 때 세진에게 딱히 좋을 것도 없는 가정이었다. 절대 너 때문에 온 게 아니라고 하는 탁을 추궁한 끝에, 세진은 밀려오는 실망감에 파묻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세진은 이경이 자신을 신경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망했단 티를 내고 싶지 않아 세진은 그럼 여긴 왜 왔냐고 탁에게 계속 캐물었다. 탁은 보기보다 완고해서, 돌아오는 답이라곤 “그거까지 얘기하면 대표님한테 혼나” 뿐이었다.
“뭐 어떻게 혼나길래? 월급이라도 까여? 아님 뭐 어디 잡혀가서...”
“너 되게 전근대적인 발상을 한다. 우리 대표님을 뭘로 보고.”
“애도 아니고, 그냥 혼나는 게 무섭냐?”
“야 그거는, 그니까, 누군지가 중요한 거지.”
탁이 걱정스럽게 얼굴을 구기며 작은 한숨을 뱉었다. 잠시 정적이 이어지며 탁의 눈동자가 아무것도 없는 먼 곳을 훑었다. 자신의 대표님을 생각하는 중인 것 같았다. 이경을 생각하는 탁을 보며 세진은 이경과 탁을 생각했다.
“대표님한테 미움 받기 싫구나.”
탁이 구겨진 얼굴에 의아함까지 담아 세진을 쳐다봤다.
“당연하지, 나 월급 주는 분인데. 암튼 너 좀 가라. 나 일해야 된다. 아... 너한테 들킨 것도 아시면 한소리 하실 거 같은데.”
세진은 핸들에 머리를 박고 걱정하고 있는 탁을 두고 널찍한 차 안을 훑어봤다. 희미한 가죽 냄새가 났다. 세진은 이경이 저 자리에 앉았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다가 스스로가 징그럽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 한번 의식하자 세진은 탁의 기척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탁이 정말로 세진 때문에 학교를 감시하는 게 아니라면 남은 가능성에는 세진의 전 의뢰인 정도가 있었다.
세진이 이경에게 의뢰받은 일은 단순했다. 이경을 처음 만나게 해준-본인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고 세진과 이경이 만난 일은 물론 서이경을 알지도 못하겠지만-의뢰인 정미연의 미등록 폰을 복제하는 일이었다. 세진에겐 다른 센티넬들이 드글대는 곳에서 남의 물건을 몰래 빼돌렸다가 다시 돌려놓는 일보단, 이경이 떠나고 혼자 남은 응접실에서 붉은 얼굴을 드는 게 훨씬 더 어려웠었다.
조이사에게 임무 설명을 들을 때 이미 세진은 미연의 미등록 기기가 뭔지 알고 있었다. 의뢰 완료를 위해 최원재 사진을 뽑아 보여준 날, 미연이 손마디가 하얗게 될 때까지 눌러 쥐고 있던 핸드폰이 그것이었다. 집어 던지거나 으스러트리고 싶은 걸 세진 앞이라 참는 것처럼 보였었는데, 그날 박살나지 않았길 바란 게 무색하게도 폰은 사감에게 들키지 않게 주문제작한 케이스 가장 아래쪽에 곱게 놓여있었다. 핸드폰 입장에선 캐비닛에 처박혀 있는 건 물리적으로 박살난 거나 마찬가지겠지만. 그 덕에 수월하게 일을 마친 세진은 며칠 뒤 미연이 또 다른 미등록 폰을 쓰고 있는 것을 봤었다.
세진은 그래서 탁이 잠복 중인 것이라 생각했다. 최원재와 관련된 필요한 데이터만 뽑아낸단 말은 거짓말이었고, 미연이 최원재와 주고받을 연락을 염탐할 계획이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미연이 세진의 보고를 받고 화나서 최원재와 연락하는 핸드폰을 거들떠도 안 보게 될 것은 서이경의 예상범위 밖이었을 것이다. 이 추측은 미연이 외출중일 때는 탁의 기척이 느껴진 적 없었기 때문에 점점 더 기정사실화 되어갔다. 그렇게 생각하니 세진은 왠지 500만원을 훔친 기분이 되었다.
이경이나 세진이나 최원재와 정미연의 관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보량은 비슷했다. 이경이 자신을 언제부터 조사해놓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세진이 찍은 사진이 어떤 내용인지 알고 있었고 미연의 의뢰 내용에 대해서도 어렴풋하겐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정미연과 최원재의 관계가 변화할 것은 세진이나 이경이나 조금만 생각해봤으면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경이 500만원을 지불하고 가져간 복제품이 값비싼 쓰레기가 됐다 해도 세진이 빚진 기분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소리다.
그러나 언제나 애매한 양심이 문제였다. 세진이 실제로 이경에게 빚진 부분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 의도야 어쨌든 탁은 위험한 순간에 세진을 도와줬다. 그리고 최원재와 최원재의 센티넬들이 세진을 똑똑히 봤는데도 세진이 지금까지 무사한 걸 보면 ‘김작가’라는 사람이 세진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준 것 같았다. 물론 둘 다 세진이 요청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이경의 지시였을 것이다.
이경이 같이 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확인 차 탁에게 찾아갔다가 탁과 친해진 것도 가책의 일부분을 차지했다. 같은 자리에 몇 시간씩 혼자 앉아 갑갑해 몸부림치는 탁을 보면 좀 불쌍하단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뭘 해봤자 자신은 돈 한 푼 못 받을 일이었고, 탁이 정확히 어떤 것을 얻어가려고 잠복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기도 했을 뿐더러, 탁의 감시가 일주일을 넘어가기 시작하자 미연에게도 조금씩 미안해졌기 때문이었다.
“이세진씨. 잠깐 얘기 좀 해요.”
그래서 세진은 미연이 열람실에서 자신을 불러냈을 때, 놀라서 심장이 못해도 배꼽까지는 떨어진 기분이었다. 세진은 미연과 세진을 번갈아가며 의아하게 쳐다보는 마리를 두고 쭈뼛거리며 미연을 따라 사람이 없는 바깥 복도로 나갔다.
“ㅇ, 왜 불렀어요?”
“왜? 그건 세진씨가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요. 나한테 할 말이라도 있어요?”
미연이 찡그리며 따져 물었다. 그제야 세진은 요즘 자신도 모르게 미연을 주시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대로 다 말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새로운 정보를 얻을 기회를 대충 날리고 싶지도 않았다. 세진은 눈썹에 힘을 빼고 어색한 미소를 띠었다.
“그...냥 걱정이 돼서요. 저번에 그런 일도 있었고.”
“다른 사람 일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이건 업무 이후에 애프터서비스 차원에서... 괜찮냐고 물어보고 싶었어요.”
세진의 말에 미연이 얼굴을 더 일그러트리며 고개를 돌렸다. 미연의 반응을 본 세진은 미연을 조금 화나게 만들기로 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흥분은 진실의 입을 가볍게 한다.
“근데 미연씨 성인이긴 하지만 아직 학생인데, 그런 건 좀... 좀 그래 보이던데.”
“뭐라구요?”
“유부남인 건 둘째 쳐도 남자가 나이도 많고 여자도 많고, 뭐 돈도 많아 보이긴 했지만...”
“이세진씨!”
“아 물론, 미연씨가 돈 때문에 만난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 절대 아니구요. 근데 요즘도 자주 나가는 거 같길래.”
미연이 분과 짜증과 억울함이 뒤섞인 눈으로 세진을 노려봤다. 세진에게 느껴지는 압박감은 기분 탓만이 아닐 것이다. 세진은 자신과 비슷한 미연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세진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버티며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을 유지했다.
“정말 불쾌하네요. 내 연애사 하나 알았다고 이세진씨까지 나를 그딴 식으로 매도해도 되는 줄 알아요?”
“아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 정말로. 그냥 연애사니까 제가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거죠. 지금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겠지만, 사랑이라는 거, 지나고 나면 정말 별 거 아니에요. 한 사람한테만 너무 연연해하지 않아도 인연이라는 건,”
세진의 투명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미연이 실소했다.
“하, 사랑? 인연?”
“아직 젊으니까 사랑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죠. 그치만 그런 감정은 어차피 충동적인 거고,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거잖아요.”
“낭만적이게 사랑타령이나 하는 게 지금 누군지 모르겠네. 내가 고작 사랑 때문에 끌려 다니는 거 같아요? 남 일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어서 정말 좋겠네요. 이세진씨가 이렇게 주제파악도 안 되는 인간인 줄 알았으면 내가 일 안 맡겼지. 나이 좀 많다고 간섭할 권리 생기는 것도 아닌데 아무한테나 참견 마요.”
이를 갈며 말을 쏟아낸 미연은 더 따질 말이 남은 것처럼 울컥이다가 그냥 입을 다물고 세진에게서 등을 돌렸다. 세진을 구길 듯이 찍어 누르던 압력도 미연을 따라 멀어졌다. 세진은 미연이 복도를 벗어나기 전에 급히 외쳤다.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요! A/S니까 부담 갖지 말구!”
세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연 뒤쪽의 유리창이 터져 박살났다. 미연은 돌아보지도 않고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그게 며칠 전이었다. 그 사이에 미연은 외출계를 한 번 냈고, 한 번 몰래 빠져나갔다. 미연과의 대화에서 알게 된, 미연이 최원재와 뭘 하는지는 몰라도 떳떳하지 못한 일이고, 그게 삼류 연예 잡지에 실릴 가십거리 정도가 아니라는 것, 미연과 최원재 사이를 아는 누군가가 세진처럼 미연을 열받게 한 적 있다는 것 외에 추가로 알아낸 건 없었다.
미연이 두 번 외출하는 동안 탁도 세진에게 두 번 발각됐다. 세 번째로 걸렸을 때 탁은 시무룩하게 쇼핑백 더미를 세진에게 안겼다. 쇼핑백마다 비싸 보이는 옷과 구두, 가방, 장갑, 악세서리 같은 게 담겨있었다. 마지막으로 열어본 쇼핑백에서는 남성용 정장 재킷이 나왔다. 이경을 처음 만났을 때 세진이 걸치고 있던 것과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이게 뭐야?”
“수트, 코트, 목걸이, 귀걸이, 구두, 어... 그리고...”
“대표님이야?”
쇼핑백 내용물을 살피는 척 하던 탁이 찡그린 얼굴로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너한테 들킨 거 들켰어.”
“2주면 오래 숨겼지. 그래서?”
“그래서는, 나 엄청 깨졌다. 친구 생겨서 신났냐 하시던데.”
세진은 불퉁한 탁에게 조금 더 인내심을 갖기로 했다.
“니가 대표님한테 깨진 거랑 이게 다 무슨 상관이냐고.”
“니가 나 또 찾아내면 주라던데.”
“왜?”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넌 이유도 모르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하냐? 이 많은 걸 대체 나한테 왜,”
“주면 그냥 받지 말 진짜 많네. 그냥 우리 사칙이 그래. 첫째, 지시받은 일은 무조건 한다. 둘째, 지시받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다. 셋째, 어떤 일에도 이유는 묻지 않는다.”
“니네 사칙 같은 건 모르겠고, 난 이거 안 받아. 못 받아.”
“좀 그냥 가져가면 안 되냐?”
“너 같으면 이렇게 비싼 걸 이유도 없이 받겠냐?”
“이유. 뭐, 있을 수도 있지.”
“무슨 이유?”
“아, 잘 생각해 보면 그런 게 있을 수도 있잖아!”
“왜 소리를 지르냐!”
“그, 그건 미안. 어쨌거나 내 임무는 이거 전달이니까, 안 가지려면 버리든가, 아님 니가 직접 돌려드리든가. 하여튼 난 줬다.”
옷과 장신구를 가져가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는 세진과 니가 안 가져가면 내가 또 혼난다는 탁의 실랑이가 길어졌다. 자긴 바쁘니까 제발 그만 가라고 사정사정하던 탁은 결국 세진과 물건들을 차 밖으로 밀어내고 바로 시동을 걸어 사라졌다. 순식간에 길바닥에 나동그라진 세진은 어쩔 수 없이 흩어진 쇼핑백들을 챙겼다. 받을 이유는 없는 것들이지만 버릴 수도 없고, 또 돌려주러 이경을 직접 찾아갈 생각을 하니 기분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쇼핑백은 사무실에 그냥 놓고만 와도 되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가서 돌려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세진은 짐들을 곱게 챙겨 방에 가져다 놓았다. 벌써 4시가 넘었으니 지금부터 나갈 준비를 하다간 퇴근시간이 될 거 같고, 왔다 갔다 하느라 학식 시간 놓치면 밖에서 저녁 사먹을 돈도 없고, 입을만한 옷은 하필 어제 세탁실에 맡겼고...
세진은 이경에게 오늘 갈 수 없는 변명들을 쌓아올리며 복도를 서성였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 준비가 옷이든 화장이든 마음이든. 세진의 손에서 핸드폰 화면이 켜졌다가 꺼지길 반복했다.
이경에게 연락을 할지 말지, 연락을 하면 뭐라고 하면서 만나자고 해야 할지 고민하며 괜히 날씨 어플을 켜보던 세진의 눈에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미연이었다. 세진이 반사적으로 아는 체 하려는 순간 미연의 모습이 홀로그램 스위치를 끈 것처럼 사라졌다. 세진의 것과 비슷한 능력이었기에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학교를 몰래 빠져나가기에 유용한 스킬이었다.
세진은 미연이 몰래 나간 횟수에 1을 더하다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미연이 여기 있는데 탁은 뭐가 바빠서 먼저 갔지? 미연이 목표가 아니었다면 오늘 학교에는 왜 왔지, 단지 선물을 전하기 위해서? 고작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의문들이 연이어 튀어나왔다. 자동차로 세진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센티넬을 미행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했다. 세진과 미연은 조금 무리하면 몇 블록씩 순간이동이 가능했으므로 차도를 따라 이동할 이유가 없었다. 가이딩을 받지 못할 상황이라 순간이동을 할 수 없다고 해도, 꼬리가 붙은 것 같으면 근력만으로도 건물 몇 개 뛰어넘어 따돌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미연의 능력을 미리 알지 못했다고 해도 미행 한번이면 깨달았을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탁은 왜 매번 차를 몰고 오지? 그것도 항상 똑같은 차를? 탁의 능력이면 차를 타지 않는 편이 훨씬 눈에 덜 뜨일 텐데. 이제 11월도 끝나가고 그냥 있기는 추우니까, 탁이 차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아서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세진은 자신이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나는 탁의 존재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 알 수 있었지? 탁이 지금까지 잠복을 한 게 맞긴 한 건가? 정미연이 학교에 없을 때 탁도 근처에 없었던 이유가, 혹시, 탁이 미연을 따라가서가 아니고 그 반대였다면?
세진은 야상을 대충 꿰어 입고 황급히 미연의 흔적을 찾아 따라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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