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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님(트위터 Arendelle_Y4)께서 5/10 케스에 내신 뤁쇼책 <A Daily Life>에 실린 짧은 축전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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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님 루트쇼 개인지 내신 거 정말정말 축하드려요!! 책이 못 나올 거 같다고 울상이셨지만 저는 여사님이 어떻게든 완성하실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 다시 한 번 축하드려요~! 여러분 여사님한테 리퀘도 많이 주시고 막막 채찍질해 주세요. 제 존잘님 이렇게 존잘이시면서 그림을 자주 안 그리신달찌ㅠ.ㅠ 아래는 축하의 마음을 담은 짧은 루트쇼에요^0^ 뤁쇼행쇼(엄숙

 

 

 

 

비가 오는 풍경 by 얼음

 

  비오는 날은 조금 습하고 축축하고, 그래서 밖에 나가기 꺼려진다는 것 외엔 쇼에게 다른 날들과 똑같은 날 일 뿐이다. 거기에 더해 천둥번개가 쳐도 쇼는 별 감흥이 없었다. 평소보다 약간 더 번쩍거리고 시끄러워서 정신이 없긴 하지만 그래봤자 기상현상 중 하나일 뿐인 것에 싸이코패스가 무슨 특별한 감정을 갖겠는가. 그러나 지금 쇼 옆에서 천둥소리가 들릴 때마다 움찔거리고 있는 여자에게는 천둥번개가 기상현상 중 하나로만 와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30분 전 저녁을 배부르게 먹은 쇼는 소파에 기대 병맥주를 마시며 일 없이 TV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보통 이 시간이면 쇼는 은밀한 산책을 나갔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남자들과 함께하는 밤마실은, 하루 종일 백화점 매장에서 얌전한 척하느라 좀이 쑤신 쇼의 근육을 풀어주는 유일한 시간이었고, 쇼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오늘 밤 쇼는 쏟아지는 폭우 때문에 집에서 꼼짝없이 무료한 얼굴로 나쵸만 씹고 있었다.
  아까 지나친 재미없는 코미디 프로라도 봐야하나. 기계적으로 채널 버튼을 연타하는 쇼에게 줄기차게 쏟아지는 빗소리는 이제 배경음처럼 들렸다. 그러다 별안간, 무드등만 켜 놓아서 약간 어두운 방 안을 번쩍이는 번개가 채웠고, 몇 초 뒤 천둥이 쳤다. 쇼는 별 반응 없이 탁자에 발을 올린 자세 그대로 계속 리모컨을 눌러 이 채널 저 채널로 옮겨 다녔다. 두 번째 천둥은 아까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더 큰 소리로 울렸다. 루트가 소리 없이 쇼 방에 들어와 슬쩍 자리 잡은 건 그때쯤이었다. 쇼는 처음엔 루트에게 당장 나가라고 하려 했으나, 곧이어 내리친 세 번째 번개와 세 번째 천둥에 루트의 어깨가 눈에 띄게 파들거리는 것을 보고, 그냥 TV나 계속 보기로 했다.


  그렇게 두 여자는 말없이-간만에 사소한 말다툼도 없이 평화롭게- 게스트들이 오버해서 웃는 연기를 하는 코미디 쇼를 보았다. 빗소리가 이제 좀 잦아드나 싶더니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고 다시금 굵은 빗발이 후두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평화로웠다. 괜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라는 수식어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일깨워 주려는 듯 연달아 울리는 천둥소리에 루트가 쇼 품을 파고들었고, 고막을 잡고 흔드는 것 같은 천둥이 끝날 쯤에 루트는 쇼에게 거의 안겨있었다. 천둥이 멎은 뒤 정신을 차린 루트가 쇼의 품에서 살짝 고개를 들었고, 두 번째 병맥주를 마시고 있던 쇼는 맥주가 아직 남은 유리병을 옆 탁자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미안. 좀 놀라서.”


  짤막하게 사과하며 떨어지는 루트를 보며 쇼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루트는 작은 한숨을 뱉으며, 쇼가 방문을 가리키며 이제 나가는 게 좋겠다고 말할 것을 기다렸다. 그러나 쇼는 루트의 예상과 달리, 문 반대쪽의 창문으로 다가가 커튼을 더 야무지게 여미고 다시 루트 곁으로 돌아와 맥주를 계속 마셨다.


  “비와서 추우니까, 여기서 같이 자던가. 난방비도 아낄 겸.”


  루트가 살짝 웃으며 고맙다고 했고, 쇼는 너 좋으라고 그러는 게 아니고 내가 추울까봐 그러는 거라고 쏘아붙였다. 루트는 툴툴대는 쇼의 팔을 안고 쇼에게 기대며, “그래 그걸로 충분해.”라며 웃었다. 쇼는 팔을 감아오는 루트의 손에 파드득 놀라 루트를 밀쳤다가, 루트의 처진 눈썹을 보고 머쓱하게 일어나 담요를 가져왔다. 다 안다는 투로 미소 짓는 루트에게 그렇게 웃지 말라고 틱틱대면서도 쇼는 담요를 꽁꽁 여며주며, “이걸로도 충분 할 거야.”라고 했다.


  쇼에게 그날 밤 비가 오는 풍경은 재밌는 척 연기하는 유명인들의 웃음소리와, TV소리를 덮는 빗소리와, 가끔씩 그런 빗소리마저 덮는 천둥소리, 자신에게 기대 반쯤 누워서 천둥이 울릴 때마다 가느다랗게 떨리는 루트의 온기, 그리고 루트가 자신에게 기대기 전에 냉장고에서 꺼내오지 못해 마시지 못한 세 번째 맥주로 기억되고 있다.


-fin.

 

 

 

 

 

Posted by 얼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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