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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9.01 [클로캣] 서른, 스물셋 - 상
  2. 2015.08.01 [클로캣] 악몽

https://twitter.com/poice_RS/status/637508439288078336

알티 수만큼 클로이 나이, 관글 수만큼 캐서린 나이 해시태그했습니다. 구러니까 ㅋH붕.. 주으1...☆

다 쓰고 올리면 너무 늦어질 거 같아서 상편으로 올려여 하편은.. 나중에 언젠가 쓸 것(...

 

(주의: 아래 글에서 나타나는 특정 직업군에 대한 묘사는 등장인물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제 생각과는 다른 시각이며, 읽는 분들의 주관과도 다를 수 있음을 명시합니다)

 

 

 

 

 

 

 

 

-

 

 

 고작 6층짜리 건물이라 아파트라고 부르기 어색한 아파트의 꼭대기층 공용 복도에, 고작 손바닥만한 넓이라 테라스라고 부르기 어색한 테라스에서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 건물은 원래 금연이지만, 이곳은 최상층이라 담배 냄새 난다고 발을 쿵쿵 굴러대는 윗집 주민이 없었다. 그리고 이 담배 연기를 맡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유일한 사람인, 가장 가까운 방의 세입자는 이런 건 신경 안 쓰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초겨울 밤에 뻥 뚫린 테라스에서 셔츠 차림으로, 그것도 한쪽 소매는 걷고 팔짱을 낀 채 덜덜 떨며 담배를 피우는 붉은 머리의 여자는 이 아파트에서 두 블록 떨어진 의전대학원에 다니는 캐서린이었다. 캐서린은 입김인지 담배 연기인지 모를 것을 내뿜으며 복도 끝 방, 그러니까 지금 캐서린이 있는 테라스로부터 세 걸음도 떨어지지 않은 방에서 새어나오는 신음소리를 들었다.

 


 캐서린의 옆방이자, 이 건물에서 두 번째로 넓은 방에 살고 있는 여자의 방에서는 종종, 아니 매우 자주 저런 소리가 들려왔다. 거의 매주 있는 시험 때문에 방보다 독서실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캐서린도 일주일에 꼭 한 번 이상은 저런 소리를 들었으니, 캐서린은 옆 방 여자가 아마 거의 매일 섹스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짐작했다. 그리고 캐서린이 본 바로는, 여자의 잠자리 상대는 일정하지 않았다.

 


 맹세컨대 일부러 본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이 소리를 들으려고 일부러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 게 아닌 것처럼,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요란하게 키스를 하며 들어오는 옆집 여자-그리고 볼 때마다 바뀌는 상대 남자-와 마주치는 것도 결코 고의는 아니었다. 캐서린은 방에 담배 냄새가 배는 것은 싫지만 그렇다고 고작 3분 담배 피우려고 느려터진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고 싶지는 않을 뿐이었다. 옥상으로 통하는 문은 얼굴 한 번 못 본 건물 주인이 안전이니, 쓰레기 투기니 하는 문제를 핑계로 막아뒀고, 건물 뒤쪽의 흡연구역은 이 근방의 질 안 좋은 남자애들이 진을 치고 시간을 때우는 곳이라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캐서린은 이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웠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캐서린이 딱 담배 두 개를 태우자 옆 방 여자의 신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이번 놈은 6분 걸렸군. 캐서린은 골목 한 쪽의 쓰레기 더미 위에 꽁초가 떨어지도록 신경 써서 담배꽁초를 던지고-성공 확률은 절반 정도였다- 걷어 올렸던 소매를 황급히 내려 소매단추를 채웠다. 그리고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테라스에 떨어져 있을지도 모를 담뱃재를 치우기 위해 슬리퍼로 바닥을 몇 번 쓸었다. 듣기 싫은 타일 바닥 긁히는 소리를 몇 번 내고, 마지막으로 가장 거슬리는 테라스 문 열리는 소리를 낸 뒤에야 캐서린은 초겨울 도시의 건물 사이에 부는 칼바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캐서린은 추위를 털어내려는 듯 밖에서보다 더 발작적으로 떨리는 어깨를 감싸 안고 긴 복도를 지나 방으로 돌아왔다. 담뱃재 밟은 신발 대신 뽀송한 실내용 슬리퍼로 갈아 신은 캐서린은 나가기 전에 버튼을 눌러둔 전기 주전자의 뜨거운 물로 녹차를 우렸다. 캐서린은 건물에서 가장 넓은 방에서 뜨끈한 녹차를 마시며, 자신이 살기 전부터 들어와 있던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었다. 다시 작은 신음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옆방의 남녀가 2차전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처음 저 소리를 들었던 건 캐서린이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학기 시작 직전의 여름이었고, 캐서린은 더운데도 오늘처럼 셔츠를 입고, 대신 오늘과 다르게 머리는 하나로 모아 질끈 묶고 있었다. 그 날은 캐서린이 옆방 여자와 처음 마주친 날이자, 테라스에서 담배 피우던 걸 그 여자에게 들킨 첫 날이기도 했다. 저녁 7시가 다 됐을 때였지만 아직 해는 기울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았다. 늦여름 더위 속에도 셔츠 단추를 끝까지 채운 캐서린은 담배 잡는 쪽 소매만 걷어붙이고 긴 담배 끝에 불을 붙였다. 캐서린이 테라스 난간을 등지고 투명한 테라스 문 너머의 텅 빈 복도를 보며 첫 연기를 내뿜는 순간,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울리고 여자가 내렸다. 엘리베이터를 기준으로 테라스 반대쪽은 캐서린 방 밖에 없으니, 여자는 당연하게도 테라스 쪽으로 몸을 돌렸고, 담배 쥔 손을 어정쩡하게 허공에 둔 캐서린과 눈이 마주쳤다. 캐서린은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몸을 돌려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건물이 금연이라는 소리를 못 들었다고 하지 뭐. 아냐, 저 여자는 별로 신경 안 쓸 거야. 내가 또 괜히 소심하게... 초조하게 담배 끝을 씹던 캐서린은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리는 테라스 문 때문에 난간 밖으로 떨어질 것처럼 놀랐다. 하지만 다행히 건물 아래로 떨어진 건 캐서린이 피우던 담배뿐이었다.

 


 “이사 온 학생인가봐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캐서린 혼자 서있기도 빠듯한 테라스에 들어와 섰다. 방금까지 캐서린이 맡던 도시의 매캐한 매연과 담배 냄새를 밀어내고, 여자의 향수 냄새가 캐서린을 감쌌다. 눈을 접어 예쁘게 웃는 여자에게 캐서린은 고개만 끄덕이며 몸을 뒤로 뺐다. 더운 여름에, 처음 보는 여자와 코가 부딪칠 것처럼 좁은 테라스에 마주 서있는 상황은 캐서린에게 당연히 불편했다. 캐서린보다 몇 살 더 많아 보이는 여자는 자신이 옆방에 살고 있다며 편하게 클로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캐서린이 대꾸를 하지 않았는데도 클로이는 좁아터진 공간에서 악수하자는 것처럼 손바닥을 펼쳐 내밀었다. 아마 그때 클로이의 손을 내려다보던 캐서린의 눈빛은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걸 보는 것 같았을 것이다. 캐서린이 가만히 있자 클로이는 어색하게 손을 거두며 테라스 문을 열었다. 다시 한 번 끼익 하는 소리가 나고, 한 발은 복도에, 한 발은 아직 테라스에 있는 클로이가 나가려다가 고개만 돌려 한 마디를 더했다.

 


 “건물 주인한테 따로 얘기는 안 할게요.”

 


 그러면서 클로이는 손가락 두 개를 입술 앞에 가져다 댔다가 떼며, 담배 연기를 내뿜듯이 허공에 입을 오므렸다. 클로이의 방 문이 쿵 닫히고, 테라스에 혼자 남은 캐서린은 귀까지 빨개진 채로 새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캐서린은 클로이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생활했다.

 

 

 

 처음 며칠은 주인에게 항의를 할까 고민했지만, 매일 섹스를 하든 케밥을 먹든 어쨌거나 그건 클로이의 사생활이었고, 건물 벽이 얇아 소리가 들리는 건 클로이 탓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사를 가자니, 아무리 전시용 방이었다지만 도심 한복판에 이렇게 깨끗한 가구가 있고 냉난방도 되는 월세 800달러짜리 방만한 다른 방을 구하는 건 죽었다 깨나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결국 캐서린은 그냥 살기로 결정하고, 싼 방 값으로 아낀 돈을 고스란히 투자해 좋은 헤드폰과 좋아하는 클래식 앨범 시디 몇 장을 샀다.

 

 

 

 

 캐서린이 클로이의 남자가 매번 바뀐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그로부터 한 달 뒤, 집주인에게 다음 달 집세를 계좌이체 한 직후였다. 그 주에만 세 번째 남자가 클로이의 방으로 들어가고, 캐서린은 시험공부도 내팽개치고 테라스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클로이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도시의 빌딩들 사이로 지는 해가 붉었고, 완연한 가을이라 조금 쌀쌀했다. 캐서린은 그날도 역시 목 끝까지 잠근 셔츠를 한쪽 팔만 걷고 있었다. 캐서린은 몸을 팔며 사는 여자들에게 아무 감정도 없었다. 혐오나, 질투나, 분노나, 연민 같은 감정들 중 어느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런 감정을 가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볼품없는 몸매, 뻣뻣한 머릿결, 생기 없이 허여멀건한 피부에 주근깨 자국을 가진, 재미없는 뿔테를 낀 의대생이지만, 캐서린은 스스로에게 큰 불만이 없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두어번 데이트를 해본 것 말고는 제대로 된 남자친구를 가져본 적 없다는 것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실은 음대를 가고 싶었지만 의대 진학에 유리한 분자생물학과를 선택한 것도, 공부만 하느라 더더욱 인기 있는 여자와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것도, 캐서린은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설령 진짜로 지금 생활이 지긋지긋하고, 당장이라도 테라스 난간 밖으로 ‘자랑스러운 모범생 딸’ 타이틀과 함께 몸을 던지고 싶을 정도로 따분하다고 해도, 그게 몸 파는 여자들 탓은 아니었다. 그네들이 마음먹은 누구라도 유혹할 수 있는 것처럼 보여도, 혹은 이런저런 이유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런 일 밖에는 할 수 없어진 한심한 인생이라고 해도, 그들이 남자들과 돈 받고 자기 때문에 캐서린이 인기가 없는 사람이고 재미없는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클로이의 많은 yes와 enough와 그보다 더 많은 의미 없는 앓는 소리를 들으며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우던 그 때의 캐서린의 감정은 혐오나 연민이나 질투나 분노나, 혹은 배신감 중 어느 것도 아니었다는 소리다.

 


 클로이의 숨넘어갈 것 같은 신음 소리가 들리다 멎고, 짧은 샤워 소리가 들리다 멎었다. 그날의 남자는 클로이의 방을 떠났다. 그러는 동안 캐서린은 담배 6개비를 태웠다. 샤워하는 소리가 또 들리고, 잠시 후 코트를 걸친 클로이가 테라스로 나왔다. 클로이가 나오자 캐서린은 8번째로 불붙인 담배를 테라스 난간에 비벼 끄고 쓰레기장 쪽으로 던졌다. 담배를 한 번에 많이 피워 목과 입이 텁텁했다. 캐서린은 산발인 머리를 대충 하나로 묶고, 늘 입는 밋밋한 셔츠에 담배 쩔은 내를 풍기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져 클로이에게서 몸을 돌렸다. 그러나 캐서린은 곧 그것이 한 발짝도 멀어질 수 없는 테라스에서는 무의미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금 샤워를 했을 텐데도 클로이에게서는 여전히 평소와 같은 좋은 냄새가 났다. 아마도 그때가 캐서린이 클로이게 먼저 말을 건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었을 것이다.

 


 “무슨 향수 써요?”

 


 서로의 팔꿈치가 부딪힐 것 같은 좁은 테라스에 나란히 서서, 클로이는 멍청한 표정으로 캐서린의 말을 되풀이했다.

 


 “향수?”

 


 캐서린은 대꾸하지 않았다. 클로이는 혼자 아아, 하는 감탄사를 내뱉더니, 코트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향수가 아니라 핸드크림이에요.”

 


 클로이가 처음 만났던 날처럼 캐서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캐서린은 이번에도 미동 없이 클로이의 손을 보기만 했지만, 이번에는 클로이가 캐서린을 기다리지 않고 손을 가져갔다. 캐서린은 움찔했지만 손을 빼지는 않았다. 클로이는 캐서린의 손등에 핸드크림을 짜고, 두 손으로 부드럽게 문질렀다. 클로이의 향이 캐서린을 훅 덮쳤다.

 


 “향기 좋죠? 나는 가끔 몸에도 발라요.”
 “......”
 “...이거 줄게요. 가져가요.”
 “왜요?”

 


 캐서린의 물음에 클로이가 혀로 입술을 핥으며 잠시 뜸을 들였다.

 


 “이걸 학생이... 가졌으면 좋겠거든요.”

 


 캐서린은 거절도, 몸 어디에 바르냐는 질문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두 달이 더 지났다. 클로이가 준 핸드크림은 캐서린의 화장대 제일 오른쪽에 있고, 캐서린은 가끔 혼자 집에 있을 때 그걸 바르곤 했다. 오늘처럼 클로이의 소리가 들리는 날에. 오늘 남자는 클로이의 방에 오래 있었다. 그 동안 캐서린은 모레 있는 시험 과목 책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두 시간 째 같은 페이지를 노려보며 캐서린은 세 번 정도 테라스로 나가 담배를 피우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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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얼음아
, |

[클로캣] 악몽

기타 / 2015. 8. 1. 18:31

좀 짧아요

 

 

 

 

 

-

 

 

 

 캐서린 스튜어트는 악몽을 꾸었다. 

 

 

 

 

 “헉, 하, 하아...”

 

 

 캐서린은 푹신한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그곳이 어딘지 가늠하는 몇 초의 시간이 흘렀다. 캐서린은 반쯤 일으켰던 몸에서 힘을 빼며 긴 숨을 내쉬었다. 놀랍게도 이곳에서 잠이 든 모양이었다. 그녀의 뒤척임에 옆자리에서 가늘고 헐벗은 팔이 올라와 캐서린의 허리를 감았다.

 

 

 “미안, 나 때문에 깼니?”
 “아니요.”

 

 

 작은 손이 허리에서부터 배를 쓸며 올라와 가슴께에서 꼬물거렸다. 그 손길에 캐서린은 간지러웠고, 그 간지러움과는 또 다른 간지러움을 느꼈다. 점점 더 노골적으로 가슴을 더듬는 손길에 캐서린은 몸을 둥글게 말며 그 작은 손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꼭 감싸 쥐었다.

 

 

 “당신은요? 나 때문에 깼어요?

 

 

 캐서린 등 뒤의 목소리가 키들거렸다. 캐서린은 그녀를 안은 작은 여자아이를 향해 몸을 돌렸다. 클로이가 밝은 머리색만큼 밝게 웃고 있었다. 캐서린에게 조금 더 이곳에 머물러도 좋다고 말하는 것 같은 미소였다.

 

 

 “응.”

 

 

 캐서린은 투정부리듯이 클로이의 손에 얼굴을 부볐다. 클로이가 입을 조금 벌린 채 캐서린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언제라도 깨질 수 있는 유리 화병을 대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자신을 만지는 클로이의 사랑스러운 손길에, 캐서린은 긴장을 풀고 눈을 감았다. 클로이는 캐서린을 품에 안았다. 자신의 인생에 갑자기 걸어 들어온 캐서린을, 클로이는 남김없이 품었다. 클로이의 품에서 캐서린은 그 어느 때보다 평안했다. 다른 고민들은 조금 이따 해도 괜찮았다. 아니, 굳이 골머리를 앓을 만큼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러다 불쑥 불안감이 또 고개를 들었다. 이 아이는 날 위로해준 것뿐이야. 클로이는 이런 일에 익숙할 뿐이다. 아이에게 나는 ‘고객’이다. 캐서린에게 부끄러움과 당혹감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클로이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해 거절하는 법을 잊은, 나보다 불행할 게 뻔한, 매일 다른 사람에게 몸을 파는, 그러니 나에게도 진심이 아닐, 그녀는, 클로이는...

 

 

 정제되지 않고 휘몰아치던 캐서린의 잡념이, 그녀의 머리를 빗어 내리는 클로이의 손길에 천천히 가라앉았다. 캐서린의 머리 위로 들릴 듯 말 듯 소곤거리는 클로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내일 나랑 관현악 공연 안 갈래요? 마침 표가 두 장 있거든요. 소규모 공연이지만, 괜찮을 거예요. 당신 이런 거 좋아하잖아요. 진료 10분만 일찍 끝내구, 응? 클로이가 귀엽게 속살거리며 손바닥 전체로 캐서린의 어깨와 팔뚝을 문질렀다. 상념을 녹이며 감겨오는 온기에 캐서린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클로이의 품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클로이의 보들보들하고 말랑한 가슴이 얼굴에 닿았다. 좋은 향기가 났다. 오랜만에 느끼는 사랑이 담긴 손길은, 얼마나 달콤하고 사랑스러운지. 캐서린은 조금 울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캐서린은 악몽을 꾸었다. 빈 허공에 고갯짓을 하다 깬 캐서린이 현실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캐서린은 등 돌리고 자는 남편에게 등을 돌리고, 베개 아래를 더듬어 은빛 머리핀을 찾았다. 캐서린의 삶에 갑자기 걸어 들어온 클로이는, 아마도 평생 빠져나가지 않을 것이다. 머리핀을 쥔 손이 떨려 캐서린은 다른 손으로 떨리는 손이 움직이지 않도록 꼭 감싸 쥐었다. 캐서린의 입술이 천천히 머리핀에 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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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얼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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